
실용적 시장주의,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다. 이 대통령은 4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5부 요인과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 선서를 하고,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되겠다”며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벼랑 끝에 몰린 민생을 되살리고, 성장을 회복해 모두가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갈 시간”이라고 했다. “낡은 이념은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며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며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며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이어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나라, 두터운 사회 안전망으로 위험한 도전이 가능한 나라여야 혁신도 새로운 성장도 가능하다”며 “개인도, 국가도 성장해야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당장 성장 엔진을 되살리는 게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이미 한은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기관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대 그칠 것으로 보고 있고 역성장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 연설에서 ‘성장’을 ‘국민’ 다음으로 가장 많은 22차례나 언급하며 경제성장이야말로 우리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임을 역설했고, 취임 첫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첫 회의를 2시간20분가량 진행했다.
회의에선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한미 통상 협상이 핵심 안건으로 논의됐다. 조속한 추경을 통해 내수의 급한 불을 끄고 적극적인 통상 협상을 바탕으로 수출을 되살리는 데 집중하되 중장기적으로 성장 발전 전략 대전환을 위한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첫발을 뗀 이재명 정부가 1분기 ‘역성장’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2%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앞서 지난달 24일 공개된 속보치와 같다. 건설투자가 3.1% 줄었고 설비투자가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 위주로 0.4% 쪼그라들었다. 민간소비도 오락문화 등 서비스 소비 부진으로 0.1% 감소했다. 내수 부진 속에 수출까지 휘청이며 반등에 실패했다.
국민소득도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대로라면 지난 2014년(3만798달러) 이후 11년째 3만달러대에 머물러 국민소득 3만달러의 늪을 벗어나기는커녕 더 깊이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초에 받아들 취임 첫해의 성장 성적표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나온 일성이 ‘실용적 시장주의’다.
취임사에서 ‘성장’을 22차례나 언급한데 이어 첫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를 운용한 점을 고려해 보면 ‘실용적 시장주의’는 좌우 이념을 떠나 성장할 수 있는 정책이라면 모두 써야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시장주의가 시장경제를 의미하는지는 정확한 언급이 없으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힌 점을 보면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한 정책은 좌우 구분없이 두루 사용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10대 공약’ 맨 윗자리에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 예산 대폭 증액, 100조 원의 민간 투자 유도로 성장 기반 구축, 국가 첨단전략산업 투자 국민 펀드 조성, 안정적 연구·개발(R&D) 예산 확대, 벤처투자시장 육성, 바이오산업의 제2의 반도체산업 육성 등을 공약했다. 경제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는 약속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실용적 시장주의와 배치될 수도 있는 공약들도 다수 담고 있다. 노동분야 공약에서는 노동조합법을 개정해 하도급 노동자들이 원청 사업자와 교섭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원청 업체가 이들 하도급 근로자와 임금협상 등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사업장 내 노사자율 협의를 주도할 '근로자(노동자)대표위원회' 상설을 제도화하고 계약직, 파견직, 사내하도급 노동자들도 인원 비례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노조 성격의 사내 조직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참여할 길을 터준 것으로 사측 입장에서는 정규직 근로자 외 다양한 직군의 근로자들 목소리를 반영해 노사협상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는 내용이다.
공기업·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를 전면 도입하고 일정 규모 이상 민간회사도 경영진에 예속되지 않은 독립이사를 일정 비율 이상 선임하는 것을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또 노동 분쟁을 전담할 노동법원 설립과 주 4.5일 근무제 도입도 밝혔다. 지금도 노조의 권한이 너무 강하고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적어서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신규고용을 꺼리고 있는 실정임을 고려할 때 실용적 시장주의와 부합하는지 우려가 된다.
자본시장 관련해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의 법 개정 방침을 재확인했다.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한 관련 규정을 개정해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기업경영을 흔들 수도 있는 내용들이어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투자가 활성화되어야 침체하고 있는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규제를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해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는 취임사와 배치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셰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법인세 상속세 인하도 사라지고 있다.
에너지 관련해서는 RE100을 강조하며 신재생 및 풍력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높은 신재생 및 풍력에너지 구입단가로 현재 한전의 부채가 200조원이 넘어 전력망 투자도 못하고 있다. 높은 산업용 전력요금 때문에 공장가동을 심야에만 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RE100보다는 CF(Carbon Free)100에 역점을 두고 값싼 원전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인건비도 비싼데 전기요금까지 비싸면 기업투자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독일 등 서유럽이 이로 인해 저성장 등 고전하고 있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민주당에서는 노랑봉투법 양곡법의 재추진도 거론되고 있다. 확대추경과 지역화폐의 국비지원 의무화도 거론되고 있다. 적극적 재정 투입을 예고한 이재명 정부의 과제는 ‘나라 곳간 지키기’다. 지난해 한국 국가채무는 117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6%에 달했다. 새 정부가 하반기에 30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 GDP 대비 국가채무가 50%에 근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비기축통화국에서 과도한 국가채무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재정위기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물론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근로자들과 농민 소액주주 환경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와 때라는 것이 있다. 우선 0%대로 추락하고 있는 급한 경제살리기에 치중하면서 순리에 따라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정부 때 30여 회의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공급부족으로 마지막에 집값이 폭등하고 소득주도성장정책으로 고용이 악화되자 마침내 통계까지 조작한 적이 있다. 경제란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나는 논리가 있다. 유사한 실정이 반복되어서는 새정부의 시대적 사명인 실용적 시장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제살리기가 힘들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경제살리기에 진력해 주기를 바란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