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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청년 시론] 소셜테이너 신해철의 추억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도 10년이 되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대중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가 뭘까. 그가 더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나이였음에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서 그렇기도 하겠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그는 그저 ‘가수’라고만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은 그의 음악을 찾아 듣는 걸 넘어 그가 출연한 방송이나 발언 등을 찾아보며 그리워하고 있다.

 

신해철은 ‘마왕’, ‘락의 교주’ 등을 별명으로 가졌던 만큼, 좋은 음악을 넘어 자신의 삶과 철학까지도 대중에 전하며 팬들의 삶에 깊이 영향을 준 문화인이다. 최근 방영한 MBC 다큐 ‘우리 형 신해철’에서 나오기를, 그의 팬 중 그 덕분에 진로를 발견했다고 말한 이들도 꽤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는 ‘날아라 병아리’(1994)를 통해 죽음에 대한 고찰을 담았고,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1999)를 통해 청년의 삶에 대한 고찰을 담는 등 음반을 통해 사회적인 예술을 했다.

 

신해철의 음악은 너무 진지한 마음이 느껴져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보통 가요처럼 연인 간의 사랑 이야기를 주로 하거나 그의 대학가요제 대상 노래였던 ‘그대에게’(1988) 같은 노래만 만들면 무난했을 것을, 그는 너무 무거운 음악을 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런 음악도 꽤 세련되게 만들 수 있는 재능이 그에게 있었고, 그런 진지한 면 때문에 오히려 그를 마왕이라 부르다시피 하는 팬이 생기며 그의 팬층은 굳건해졌다. 그는 방송이나 강연에서도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라는 말을 자주 했고, 특히 강연에서는 그의 발언에 “아멘” 소리까지도 나는 수준이었다.

 

물론, 신해철은 워낙에 신념이 올곧다 보니 팬이 늘어나는 만큼 안티팬도 함께 늘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가 생각은 별로 옳지 않은데 말도 너무 잘하고 재능이 너무 많으니 그것만큼 화날 수가 없다. 어쩌면 필자도 그의 안티팬이었다. 그가 주장했던 대마초 비범죄화, 학교 체벌 금지, 간통죄 폐지 등은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동의하기 힘들다. 2002 대선 당시 그가 방송 통해 노무현 대통령 지지 발언한 걸 봐도, 경쟁 사회를 악마화하고 경쟁이 없는 이상주의적인 사회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지혜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가 주장한 걸 종합하면 대한민국이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주의적으로 나아가는 것밖에 되지 않기에, 또 그가 그런 말을 너무 현란하게 잘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아는 원리가 적용되는 걸까. 여전히 신해철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 건 많지만 그만한 소셜테이너(social entertainer)가 대한민국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만큼 알맹이 있는 사회 발언을 하는 연예인을 보기 힘들었다.

 

신해철이 그랬듯 연예인의 영향력으로 정치 발언을 크게 하는 소셜테이너는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김제동, 김윤아, 이승환, 이효리 등 이들의 정치 발언만 등장하면 언론에서 나오는 말이 있다. 이들도 국민 한 사람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주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 현재 이들에게 자유가 없나. 언론에서 덧붙여 말하는 걸 보면, 이들이 원하는 대로 발언하게 내버려두고 그걸로 논란 삼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을 돌려 “표현의 자유를 주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타당할까. 말 한마디조차도 기사화되는 이들에게, 웬만한 정치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이들에게 ‘책임 없는 자유’가 타당한 권리일까. 적어도 자신의 발언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유명인으로서의 책임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니 논란이 되더라도 그것까지 감당하는 게 맞고, 또한 한 이슈에 대해 발언하기 전 그것에 대해 충분히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있었던 가수 김윤아(자우림)의 사례를 보자. 그녀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의견을 SNS에 글 몇 줄로 썼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그 글을 쓸 때 기사화될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어쩌면 그걸 노리고 글 썼을 텐데, 그렇다면 그녀에게는 원자력 문제에 대해 ‘토론 한 판 붙자’는 자신감이 필요했다. 그건 없이 글 몇 줄만 쓰고 마니 선동밖에는 되지 않는다. 김윤아뿐만 아니라 많은 연예인들이 보이는 모습이다.

 

방송인 김제동도 비슷하다. 그는 고액 강연료 논란으로 몇 년간 방송을 쉬었는데, 그러고서 SBS ‘그 사람’ 통해 복귀했을 때 ‘자신의 몸값이 높으니 고액 강연료 받는 건 당연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에 동의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황당함이 먼저 느껴졌다. 그렇게 당당하면 왜 그동안 방송을 쉬며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나. 이에 대한 필자 생각이다. 그는 평소에 집회 연설이나 강연으로만 주로 발언했지, 자신과 반대된 입장을 가진 사람과 일대일로 치열하게 토론한 게 드물었던 것이 이유가 아닐까. 집회나 강연에서 자신은 말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말을 듣는다 해도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의 말만 주로 들으니, 자신에게 억수 같은 비판이 쏟아졌을 때 ‘그건 옳지 않다’ 하고 뚫고 나오기 힘들 수밖에 없다.

 

반면, 신해철은 SNS 통해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서 반대자들과 SNS 안에서부터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토론 현장에도 자주 나와 전문가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반대자들에게 꽤 탄탄한 논리를 보여줬다. 선동 일으키는 걸 주로 해온 소셜테이너들 사이에서, 그는 물론 선동도 기가 막히게 잘했지만 그 이전에 충분히 공부해 온 게 보여 좋았다. 그에게 붙은 ‘논객’이라는 호칭은 적절했다.

 

신해철이 소셜테이너 활동을 할 때 유명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졌을지의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실력이 있고 또 실력을 계속 키운 사람이었기에 그의 주장에 비판은 해도 비난은 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책임 없는 자유만 누린 건 아니었다. 그가 대학에서 철학 전공하다 중퇴한 학력임에도 ‘철학 조무사’ 같은 조롱을 받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헌법 조무사’라 조롱받는 김제동과 비교된다.

 

곧 신해철의 기일(10월 27일)이 온다. 그를 기억하며, 소셜테이너도 논객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고 또한 비난과 조롱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되새기면 좋겠다. 이제 대한민국도 선동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탄탄한 논리와 건전한 토론 안에서 여론이 움직이는 국민이 많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계의 성숙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보수 진영에도 신해철 못지않은 소셜테이너가 많이 길러지길 바라본다.

 

황선우 트루스가디언 객원기자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대변인

‘문화는 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