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왜 지금 다시 맹자인가 21세기 현대 정치는 고도의 지식 정보화와 대의민주주의라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내외적인 불확실성과 양극화, 그리고 정치적 불신이라는 깊은 침체에 직면해 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돌보기보다 정쟁과 권력 유지에 몰두할 때, 사회적 신뢰는 붕괴하고 공동체의 기반은 흔들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원전 4세기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를 관통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맹자(孟子)의 사상은 시대를 뛰어넘어 강력한 경종을 울린다. 맹자 사상의 핵심은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위정자가 먼저 스스로를 수양하여 천성을 회복하고, 그 도덕적 영향력으로 천하를 다스려 이롭게 해야 한다는 데 있다. 고대 왕조 국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맹자는 왕이 도덕성을 바탕으로 정치를 펼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부르짖었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도 위정자의 도덕적 책임과 민생 중심의 정책이 왜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지 설명하는 핵심적 틀을 제공한다. Ⅱ. 맹자 사상으로 본 왕도와 민생경제 맹자 정치철학의 출발점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이며, 그 핵심 동력은 인의예지(仁義
1980년 폴란드에서 한 경제학자가 슈퍼마켓을 처음 방문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것을 계획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 슈퍼마켓의 상품 배치는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다. 수천 명의 생산자, 유통업자, 소비자가 각자의 필요와 이익을 좇아 움직인 결과물이었다. 이 일화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가 평생 강조한 한 가지 진실을 압축하고 있다. 복잡한 사회 질서는 누군가의 설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자발적 상호작용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는 이것을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고 불렀다. 지식은 분산되어 있다 하이에크의 출발점은 지식에 관한 통찰이었다. 그는 사회에 필요한 지식이 어느 한 사람이나 기관에 집중될 수 없다고 보았다. 어느 지역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방식이 더 효율적인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 이 모든 정보는 현장의 수많은 개인들 속에 분산되어 있다. 문제는 이 분산된 지식을 중앙에서 수집하고 처리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관료도,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도 수억 명의
최근 전셋값이 2021~2022년 전고점을 향해 가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들어 4.1% 올랐다. 지난 8일까지 1주일 동안 오름폭은 0.32%로, 0.33%가 오른 2015년 10월 넷째 주 이후 10년 8개월 만에 가장 컸다. 그런가 하면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는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동시에 월세 상승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집주인에 대한 실거주 의무가 강화되면서 전세 매물이 줄었고 이에 따른 연쇄효과로 월세를 선택하는 임차인이 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세사기 여파도 겹치며 집주인, 세입자 모두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올해 신규 임대차계약 54%가 월세다. 전국 월세가격 지수는 105.5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임대차 시장의 월세 중심 재편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 월세 시장에서는 월 100만원 이상 고액 월세 비율이 절반에 육박했고, 월 300만원 이상 계약 비중도 9.4%로 집계됐다. 종래 집 없는 많은 서민들은 집을 사기에는 부족한 자금을 마련해 우선 전세를 살다 자금이 더 마련되면 은행 대출도 보태 집을 사는 방향으로 내집 마련을 해 왔다. 그러나 이처럼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데다 월세마저
과도한 성과급 요구는 자본주의 근간 훼손 자본주의란 문자 그대로 자본가들이 자기자본과 투자자들의 타인자본을 모아 투자해서 기업을 경영하는 경제체제다. 여기서 적극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자본가는 경영진이 되고 소극적으로 자본만 참여하는 투자자들은 초기 비공개 기업의 경우에는 벤처 투자자들이 대부분이고 기업이 성장해 공개한 공개기업의 경우에는 주식투자자들이다. 금융회사들의 대출도 포함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진 즉 기업가(entrepreneur)들이다. 기업가들은 투자해서 생산한 제품들이 팔릴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타인자본까지 끌어들여 투자를 결정하고 인력을 고용해서 생산활동을 한다. 케인즈는 이러한 정신을 ‘동물적 근성’(animal spirit)이라고 하고 슘페터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고 하며 기업경영의 본질을 혁신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창조적 혁신”이다. 새로운 발명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장 개척, 값싼 원료 발견, 비용이 적게 드는 생산방법을 찾아내는 일 모두가 혁신이다. 기업가의 혁신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업가 정신이 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란 한미연합군사령부의 미군 사령관이 행사하던 전시 작전지휘권을 한국군 대장이 행사하도록 지휘 체계를 개편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 군은 평시작전권을 보유하고 있으나, 전시작전권까지 조기에 환수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미국 측과 협의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측은 무엇보다 '조건의 충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전작권 전환 연기의 역사: 안보 앞의 냉혹한 현실 전작권 전환은 과거 여러 정부에서도 추진되었으나,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엄중한 안보 현실로 인해 매번 연기되어 왔다. 이는 전작권 문제가 단순히 주권이나 자주라는 정치적 구호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생존의 영역임을 방증한다. 시기 결정 내용 연기 사유 2007년 (노무현 정부) 2012년 4월 전환 합의 자주국방론에 기반한 최초 합의 2010년 (이명박 정부) 2015년 12월로 1차 연기 천안함 폭침, 연평
2007년 6월 29일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세상에 내놓던 날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신제품 출시가 아니었다. 전화기, 카메라, 음악 플레이어, 인터넷 브라우저를 하나로 합친 그 작은 유리판 하나는 해당 산업 및 그와 관련이 없던 산업까지 통째로 뒤흔들었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산업의 질서가 한 사람의 상상력 앞에 무너졌다. 이것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일찍이 예견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동력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렀다. 낡은 것이 무너져야 새로운 것이 선다. 그리고 그 파괴와 창조의 중심에 항상 한 사람이 서 있다고 했다. 바로 기업가(entrepreneur)다. 파괴하는 자 아닌 창조하는 자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는 단순히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기업가를 혁신자(innovator)로 정의했다. 신제품 개발, 새로운 생산방식 도입, 미개척 시장 진출, 새로운 원료 확보, 새로운 조직 형성 등 이 다섯 가지 혁신 중 하나라도 실행하는 사람이 기업가다. 단순히 기존 방식을 반복하는 사람은 슘페터의 눈에 기업가가 아니라 관리자(man
'시장(市場)'이라는 단어는 요즘 썩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경쟁은 냉혹하고, 이윤 추구는 탐욕처럼 보이며, 실패한 자는 그 자리에서 도태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자유시장이 정말 좋은 것이라면, 왜 그렇게 잔인해 보이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250년 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잠시 돌아가야 한다. 1759년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보다 17년 앞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미스를 보이지 않는 손의 경제학자로만 기억하지만, 그는 본래 도덕철학자였다. 그리고 그가 평생 씨름한 핵심 질문은 하나였다. 이기적인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공감이라는 이름의 시장 원리 스미스의 답은 공감(sympathy)이었다. 그런데 그가 말한 공감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감정이입이나 연민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타인의 처지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능력, 즉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내면의 거울이었다. 시장은 바로 이 공감의 원리 위에서 작동한다. 빵집 주인이 매일 아침 빵을 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