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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김민의 엔터 비평] 혼돈의 시대에 필요한 엘리트는?

 

대통령 선거가 있은 지 2년반만에 다시 대통령을 선출한다. 명망 있는 가문의 명문대 출신으로 소위 엘리트코스를 밟아 온 전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거는 기대는 컸지만 완주조차 못하고 끝나버렸다. 이제 다음 선수를 뽑아야하는 국민들은 완주는 당연하고 좋은 성적으로 결승점을 통과할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학벌이나 배경이 엘리트Elite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OTT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엘리트를 통해 잠시 복잡한 현실을 잊어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엘리트들(Élite)》은 학원물의 형식을 취하지만, 실상은 범죄 스릴러와 막장 멜로드라마의 경계에 놓인 문제적 작품이다. 초반은 느슨하면서도 자극적이며, 다수의 베드신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 복선이 정교하게 엮이며 사건의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드라마는 뜻밖의 밀도를 드러낸다.


《엘리트들》은 스페인의 명문 사립고 ‘라스 엔시나스’에 공사장 붕괴 사고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된 공립학교 출신 세 학생 사무엘, 나노, 크리스티안이 기존의 엘리트 계층 학생들과 충돌하며 벌어지는 갈등과 균열을 다룬다. 피해자와 가장 연관이 적었던 인물을 실제 가해자로 설정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집단이 특정인을 희생양으로 지목해 몰아가는 양상을 통해, 사회적 광기와 책임 회피의 메커니즘을 조명한다

 

◯ 미성년자 성의식, 인종 편견 등 현실문제 반영


동일 학급 내 대부분의 인물이 연애 관계로 얽혀 있다. 고등학생이라는 설정을 감안할 때, 이처럼 밀도 높은 성적 관계망은 서사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시즌 1에서는 로맨스가 마리나의 죽음과 연결되어 일정한 긴장감을 형성했지만, 시즌 2 이후부터는 극의 진지함을 흐트러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반복적이고 불필요한 베드신은 서사 전개보다는 자극에 기댄 구성으로 비칠 수 있다.


레베까 모친의 마약 사업에서 주요 공급책이 중국인으로 설정된 점은 문제적이다. 실제로 스페인 및 유럽의 마약 유통망은 중남미와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음에도, 극은 아시아인을 범죄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이는 동아시아인을 타자화하고, 인종적 편견을 강화하는 서사적 장치로 작동한다.


오랜 친구 사이였던 안데르와 폴로가 별다른 서사적 맥락 없이 갑작스럽게 동성 간의 육체적 관계를 맺는 장면은, 감정선의 축적이나 극적 필연성 모두에서 충분한 설명을 결여한 채 등장한다. 서사 흐름과 무관하게 자극적 ‘서비스 컷’으로 소모된 이 장면은, 작품의 완성도와 진정성을 동시에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극의 중심에 위치한 사무엘은 입체성이 부족하다. 그의 심리나 행동은 평면적으로 표현되며, 주요 대사조차 쉽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마지막 회차에서 형사의 잘못된 수사에 일갈하는 장면 하나만이 인상 깊게 남는다.

 

◯ 여성 권력자의 부상과 여성의 성상품화 대비


엘리트들은 주요 권력의 자리에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형사, 교장, 학교 운영위원, 양조장 원소유주인 후작부인 등은 모두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닌, 이야기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권력자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특히 교장은 사적 영역에서는 성소수자인 아들을 수용하는 부모로, 공적 영역에서는 권력을 가진 학교 관리자이자 정치적 타협을 강요받는 인물로서 복합적 역할을 수행한다. 형사는 중심 사건의 진실을 쥐고 있는 조사자로, 후작부인은 자산과 명예를 쥐고 있던 인물이 남편에게 실질적 지위를 빼앗기기 전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여성 할당을 넘어, 여성 권력자의 존재를 현실적이고 유기적으로 스토리 안에 녹여내며, 오늘날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이는 젠더 감수성을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닌 드라마의 구조적 틀 안에 내장한 좋은 사례이다.


시즌 1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마리나는 단순한 피해자나 순수한 청춘이 아니다. 그는 여러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중심축이자 갈등의 도화선으로 기능한다. 드라마는 이 인물을 단선적 희생양으로 소비하지 않고, 왜 다수의 친구들이 마리나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는지를 정교하게 서술한다. 각 인물의 시점에서 마리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인과가 차곡차곡 쌓이며, 마침내 6화, 마리나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의 공기 자체가 긴장감으로 응축된다. 등장인물들의 표정, 시선, 침묵 속에서 시청자는 이 학교 공동체에 가득 찬 정서적 복잡성을 생생히 체감한다. 이는 단순한 플롯의 개연성을 넘어, 군중 심리와 청소년기의 감정 얽힘을 심도 있게 조명한 장면이다.


극중 루크레시아가 기획한 파티는 언뜻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설정처럼 보일 수 있다. 남학생들은 스커트를 입고 과도하게 노출된 복장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으며, 여성들은 편한 옷을 입도록 강제된다. 그러나 이 설정은 단순한 유희가 아닌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동안 여성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요구되던 ‘꾸밈’과 ‘노출’이라는 외모 정치가, 이 장면에서 역전되어 남성의 불편과 조롱의 대상으로 재현된다.

 

◯ 학교에 투영된 현실 권력


엘리트들은 다양한 이항 대립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복합적 갈등을 조명한다. 빈부, 세대, 젠더, 종교, 인종, 내면과 외면, 진짜와 가짜, 성숙과 미성숙 등. 이 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구도는 바로 ‘어른과 아이’ 간의 권력 대립이다. 작품 속 아이들은 범죄, 비밀, 불안, 책임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아이들을 도구화한다.


-형사는 무리한 추궁과 오판으로 사건을 왜곡하고,
-검찰은 사무엘을 협박한 뒤 이용하고 버린다.
-카를라의 아버지는 딸을 사업의 지렛대로 삼아 마약과 강제적 관계를 유도하며,
-교장은 조직 보존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킨다.
-안데르의 아버지는 아들을 자신의 성취 수단으로 삼고, 커밍아웃 이후 곧장 떠난다.
-나디아의 아버지는 전형적 가부장의 모습을 보인다.
드라마는 이처럼 무능하거나 폭력적인 어른들을 통해, 제도와 가정이 청소년에게 얼마나 취약하고 무심한지를 비판한다.

 

《엘리트들》은 겉으로는 스릴러와 멜로드라마의 틀을 따르지만, 그 이면에는 ‘청소년을 어떻게 다루고 통제하려 하는가’에 대한 고발적 시선이 깔려 있다. 이 작품 속 어른들은 언제나 ‘제도’, ‘권력’, ‘욕망’의 이름으로 등장하며, 그로 인해 청소년들은 혼란과 상처를 감내해야 한다.


시즌 1은 단순한 사건 도입에 가까운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서사와 주제의식은 시즌 2부터 비로소 드러난다. 엘리트들은 분명 수많은 결함을 지닌 작품이다. 과잉된 자극, 반복되는 설정, 허술한 인물 구성 등은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단순히 ‘막장’으로 소비되기에는 아쉬운 지점이 많다. 청소년, 계급, 젠더, 세대 간의 권력 불균형을 교묘하게 배치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민낯을 반사하는 하나의 거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즌 3에서 주요 사건의 큰 마무리를 짓고 난 뒤, 작품은 방향성을 잃기 시작한다. 이후의 시즌들은 내용의 밀도보다 자극적인 장면 구성에 치중하며, 처음의 문제의식과 서사적 탄력을 점차 상실한다. 시즌 8에 이른 현재, 엘리트들은 더 이상 사회를 비추는 날카로운 거울이 아니라, 깨진 거울 위를 떠도는 자극으로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이야말로 이 작품이 스스로 비판하려 했던 세계의 모순과 가장 가까워진 지점일지 모른다. 한때 예리한 사회극이었던 이 작품이 결국 반복되는 자극물로 전락한 현실은 분명 아쉬움을 남긴다.
 

김민 전문기자 theMedia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