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찬사와 비난이 뒤섞인 길을 오래 걸어온 인물이다. 정치인이기에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이 공존하는 건 당연하지만, 보통의 정치인들보다 호불호가 극렬하게 나뉘었던 인물이기에 대권 도전도 쉽지 않았다. 세 번의 대선 도전 만에 당선된 이 대통령은 처음엔 당내 경선에서 선출되지 못했고, 이후엔 대선후보가 되었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낙선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팬덤만큼이나 강한 반감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곤 했다. 열성 지지자 만큼이나 ‘극렬거부자’들의 거부감이 강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꺼낸 화두는 통합, 그것도 대통합이었다. 자신을 반대했더라도 모두 포용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현실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이 대통령은 수많은 비난과 다수의 스캔들 속에 과거의 언행이 계속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이를 정면 돌파하며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중의 지지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서 비난받을 요소가 많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지지가 아닌 미움을 받으면서도 정치 활동을 이어가려면 계속 대중을 설득해야 하기에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대중의 지지는 대중예술인에게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대중예술인도 비난을 견딜 용기만 있으면 비난받아도 생존할 수 있을까? 현실에선 인기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대중예술인에게 ‘미움받을 용기’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O 이미지 노동
배우는 ‘사랑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보다 더 청렴하고 결백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말 한마디에도 논란이 될 수 있고 배우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자기표현을 하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이미지 노동자’, 나아가 자신을 브랜드 삼아 팔아야 하는 영업직 노동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과감함은 곧 위험을 의미하며, 감정 과잉은 비난의 도마 위로 올라가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배우는 미움받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O 한국 배우의 감정 절제
서구의 연기 교육은 내면의 감정을 신체로 확장해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감정은 억제보다는 외부로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고 배운다. 반면 한국의 연기에서는 ‘눈빛으로 말하기’, ‘감정을 삼켜내는 깊이’ 같은 절제가 미덕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미학은 연기 교육방식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얼굴 근육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또박또박 발음하고 강한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는 훈련 방식은 한국에서 흔한 교육방식이다.
이 방식은 절반은 옳고, 절반은 그렇지 않다. 평면적이고 매끈한 얼굴은 카메라에 굴곡 없이 잘 잡히고, 시청자가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사람은 본래 말을 할 때 얼굴 근육을 움직인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얼굴은 기술적으로는 ‘예쁘게’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인물의 생동감은 잃게 된다. 결국 ‘얼굴이 거슬리지 않는 연기’가 ‘살아 있는 인물’보다 더 우위에 놓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한국 배우들의 연기에서 특유의 억눌림을 마주한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매끈한 얼굴, 울부짖는 장면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목소리와 표정, 감정과 기분을 읽기 힘든 정적인 시선. 감정의 폭발 대신 침묵이 길어지고, 울음보다 호흡의 멈춤이 강조된다.
이러한 절제는 연기적 기법이나 예술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비난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한 방어 기제에 가깝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순간, 위험요소 소위 리스크가 발생한다. 거친 피부, 넓은 모공, 흐르는 콧물과 침, 일그러지는 표정과 팔자주름은 연기와는 무관하게 배우 개인의 외모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그 평가가 캐릭터가 아닌 배우 자신에게 향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배우를 캐릭터와 온전히 분리해 보지 못한다. 감정 연기의 강도마저 ‘인성’으로 환원되고, 결국 배우는 연기와 사생활 사이의 경계를 끊임없이 의심받는다. 우는 연기를 할 때 표정, 말투, 눈물의 양까지도 ‘진심인지’ 의심받는 환경 속에서 배우들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연기할 때조차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감정을 삼키는 연기는 단지 미학이나 스타일이 아니다. 그것은 미움받지 않기 위한 침묵의 전략이며, 배우가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택한 생존의 언어다.
O 눈치 보며 연기해야 하는 시대
한국의 대중문화는 기본적으로 도덕주의 위에 서 있다. 예술가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비난을 받는 순간, 경력은 무너지고 대중은 가혹하게 등을 돌린다. ‘본래 완벽했어야 한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배우는 인물을 연기하기에 앞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법부터 배운다. 이 이미지가 유지되지 않으면 경력도 함께 무너진다. 연예계에는 ‘나락’이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돈다. 작품의 완성도보다 인터뷰의 톤이 더 중요하고, 연기력보다 인성 논란이 더 오래 회자된다. 문제는 이 모든 환경이, 표현이 직업인 배우에게 ‘표현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예술은 원래 불편한 것이다. 인간과 삶을 날것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본래 지저분하고, 비논리적이며, 통제되지 않는다. 배우는 바로 그 불완전한 인간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감정을 숨기고 다듬기만 하면, 더 이상 연기가 아니라 적절한 표정과 톤으로 포장된 기술로 변한다.
연기의 출발점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존재하지 않듯, 진짜 연기는 그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의 결을 품는다. 우리가 어떤 배우에게 깊이 감탄하는 순간은, 그의 얼굴에서 사랑과 증오가 뒤섞이고, 미움 속에서도 따뜻함이 어른거리는 인간의 진실을 볼 때다. 불완전함을 기꺼이 드러낼 용기, 때론 미움받을 용기 없이는 진짜 예술도, 진짜 연기도 존재할 수 없다.
예술가는 흔들리고 실수하며, 삶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런 혼란 속에서 경이로운 진실이 피어난다. 그래서 연기의 해방은 단지 연기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관용과 연결되어 있다.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되는’ 시대가 오기 위해선, 배우를 이미지가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배우에게도 미움을 감당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연기가 숨을 쉬고, 인물이 살아난다. 예술은 사랑받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진실을 감당할 용기에서 시작된다.
김민 전문기자 theMedia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