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럽 경제대국인 프랑스가 재정난 극복을 위한 긴축 재정의 역풍으로 내각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루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의회 신임 표결에서 낙마해 마크롱 대통령의 정정불안이 확대되고 있다. 바이루 총리는 최근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440억 유로(약 72조원) 규모의 재정적자 감축안을 내놓았다. 이는 국가부채 비율(국가부채/GDP 비율)이 114%에 이른 프랑스의 심각한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공무원 감축, 복지 지출 동결, 공휴일 축소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프랑스가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극심한 정치 대립으로 정부 붕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했다. 이처럼 인기영합적 복지지출은 한번 퍼주기 시작하면 되돌리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단기 정치 이벤트가 아닌 국가의 구조적 위험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에리크 롬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IMF(국제통화기금) 개입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 국채 금리는 10년물 3.58%, 30년물 4.5%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신용도가 취약한 그리스 국채 금리를 웃돌기도 했다. 또 채권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시장의 불안심리가 고조됐다.
핵심은 만성화된 재정적자 문제다. EU는 재정준칙을 통해 회원국들의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0%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지난해 프랑스 재정적자는 5.8%에 달해 유로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재정적자가 구조적인 문제여서 해결이 쉽지 않다고 진단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건전재정을 지속하고 있는 독일과 달리 전통적으로 큰 정부를 지향하는 프랑스는 복지, 교육, 의료 등 공공지출 비중이 유럽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재정적자도 클 수밖에 없다.
적자재정 편성 기준과 부채 상한선을 엄격히 준수하는 독일과 달리 프랑스는 적자와 부채를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도 미흡한 가운데 좌파 우파 간의 정쟁 속에서 부채만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만성화된 재정적자를 부채로 메우는 관행이 반복되면서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114%까지 늘어나 그리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총리 신임안이 부결되어 마크롱 대통령은 새로운 총리를 선임하거나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 향후 정치적, 경제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문제는 조기 총선을 치르더라도 포퓰리즘에 물든 국민 다수가 재정 긴축에 반대하고 있어 야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는 점이다. 만약 야당이 내각을 장악하게 된다면 재정 개혁은 더욱 어려워지고 부채 문제는 오히려 악화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조기 총선이 현실화될 경우 시장은 프랑스의 부채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프랑스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불안을 심화시키며 국채 금리 상승은 물론, 유로존 전반의 금융 불안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지금 관세전쟁으로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도 그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부채 문제다. 미국은 금년 중 국가부채/GDP 비율이 122%에 달해 2차 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구조적 재정수지도 –6.7%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국세 외에 관세수입 증대를 위해 안간 힘을 쏟아붓고 있는 실정이다.
1992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 0.73%의 ‘잃어버린 세대’를 지속해 오고 있는 일본은 금년 234%로 예상되는 세계 최악의 국가부채비율(국가부채/GDP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성장을 위해 재정정책을 사용할 여력이 없어 장기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방만한 재정지출에 여념이 없다. 24조 원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국비 지원과 월 15만 원의 농어민 기본소득 시범사업 예산 등 이재명표 예산에다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올해 8973억원 대비 41.6% 증가한 1조2703억원으로 편성하고 사회연대경제 구축을 위해 8조6000억원 예산을 증액하고 있는 등 복지와 좌편향 이념 중심의 지출들이 대거 포함되어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내내 4%를 웃돈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비율(국가채무/GDP 비율)은 2029년엔 58%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박에 따른 국방비 증액 등을 감안하면 60%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40년에는 8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채무(government liability)는 한국만의 국가재정법에 의한 좁은 의미의 국가채무개념이다. 대부분 국채발행 분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고 있는 재정통계 매뉴얼상에는 공무원군인연금 충당금, 정부기능 수행으로 지게 된 공기업부채, 국가보증채무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government debt)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114%, 미국의 122%, 일본의 234%는 모두 이 기준에 의한 것이다. 한국도 이 기준에 의한 필자개인의 추정에 의하면 금년에 벌써 130% 수준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2040년에는 장기저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일본과 같은 240%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한국은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재정을 건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더 늦어면 위험하다는 신호다.
포퓰리즘이란 한번 확산되면 프랑스 남유럽처럼 되돌리기가 힘들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채무가 약 400조원 정도 큰 폭 증가한데 이어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해 약 600조원 정도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가채무뿐만 아니라 8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5∼2029년 국가보증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정부 보증채무는 올해 16조7000억원에서 2029년 80조5000억원으로 4년 만에 63조8000억원 늘어난다. 산업은행 첨단전략산업기금채권 50조 발행 등 2025년 신설된 국가전략기금이 주요 원인이다. 보증채무는 공공기관·공기업 등이 차입할 때 정부가 상환을 보증한 금액으로, 실제 국가채무는 아니지만 부실 발생 시 정부가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잠재 채무’다. 올해 신설된 첨단전략산업기금을 포함해 장학재단채권, 공급망안정화기금채권 등이 주요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공공기관 부채도 2024년 720조2000억원에서 2029년 847조8000억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정부 손실 보전 의무가 있는 주요 기관들이 수익 창출에 실패하면 결국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국가채무는 물론 국가보증채무 공기업부채 등이 크게 증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금 더 이상 재정구조가 악화되면 재정위기를 면하기 어렵게 된다.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트루스가디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