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치열한 대치 속에 연방 정부 업무 일부가 일시 정지되는 '셧다운' 사태가 1일 오전 0시1분(미 동부시간ㆍ한국시간 1일 오후 1시1분)을 기해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1월20일) 이후 처음이다. 연방 정부의 2025회계연도 최종일인 전날(9월 30일) 자정까지 의회에서 2026회계연도 예산안 또는 단기지출법안(임시예산안·CR)이 처리되지 않아 정부를 운영할 새로운 지출에 대한 법적 권한이 사라지면서 미국은 셧다운 사태를 맞게 됐다. 상원은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7주짜리 공화당의 임시예산안(CR)을 표결(가결 정족수 60표)에 부쳤으나 찬성 55 대 반대 45로 부결됐고, 민주당이 자체 발의한 임시예산안도 마찬가지로 표결에서 부결됐다.
미국에서 셧다운 사태는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18년 12월(개시 시점 기준) 이후 약 7년 만이다. 셧다운은 재정 지출에 대한 의회의 통제를 규정한 '적자재정 방지법'에 따른 것이다. 의회의 승인이 없으면 일부 예외를 뺀 대부분 기관에 예산을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연방 정부 공무원중 국가안보, 공공안전, 헌법상 기능 등과 관련된 필수 인력을 제외한 상당수가 무급 휴직에 들어가게 됐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약 75만명의 연방 공무원이 무급 휴직에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으며, 이는 전체 연방 공무원의 35%에 해당한다. 무급휴직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하면서 생기는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연방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도 일부 중단되기 때문에 시민들의 불편도 작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 여야가 임시예산안(CR)을 통과시키는 데 실패한 데다 이후 협상이 교착 속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여당인 공화당은 지난달 19일 하원에서 기존 지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클린'(clean) CR을 통과시켰지만, 같은 날 상원에서 민주당의 반대로 법안 최종 통과는 무산됐다. 민주당은 올해 말로 종료되는 공공의료보험 '오바마 케어'(ACA·Affordable Care Act) 보조금 지급 연장 등을 요구하며 공화당이 주도하는 CR에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케어 보조금 지급 연장이 불법체류자에게 의료혜택을 주는 것이라며 민주당에 이번 사태의 책임을 넘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여야 의회 지도부가 셧다운 발생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백악관에서 회동했지만,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 핵심 쟁점은 공공 의료보험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연장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셧다운 사태가 발생하면 자신의 국정과제 우선순위에 맞지 않는 업무를 수행하는 연방 공무원을 대거 해고할 방침을 밝히면서 민주당의 양보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보험제도인 메디케이드 혜택에서 불법체류자는 배제돼 있다고 항변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어불성설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번 사태 직전 셧다운은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지난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35일간 지속됐는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원인이 됐다. 이때 발생한 경제적 피해는 30억 달러(약 4조2천억원)에 달했다고 의회예산국(CBO)이 집계한 바 있다.
셧다운이 장기화할 경우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미국 대통령의 불참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2013년 오바마 전 대통령도 당시 셧다운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불참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주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 문제를 논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언급한 '4주 후'는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기간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국의 셧다운은 단기적으로는 오바마 케어 보조금 지급 연장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미국 경제가 감내하기 힘든 수준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금년 4월에 발표한 경제전망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구조적 재정수지는 2조 달러 적자로 GDP대비 6.7%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부채/GDP 비율은 2012년 중 GDP대비 100%를 넘기 시작하여 금년 중 122%에 이르는 37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증가해 2030년에는 국가부채가 47조 달러에 이르러 국가부채/GDP 비율이 128%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 트럼프행정부의 판단이다. 지금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관세인상도 근본적으로는 이런 배경에서 비릇된 것이다.
1992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 0.73% ‘잃어버린 세대’를 지속해 오고 있는 일본은 금년 국가부채/GDP 비율이 234%로 예상되어 세계 최악의 국가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성장을 위해 재정정책을 사용할 여력이 없어 장기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방만한 재정지출에 여념이 없다. 내년 예산을 보면 24조 원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국비 지원과 월 15만 원의 농어민 기본소득 시범사업 예산 등 이재명표 예산에다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올해 8973억원 대비 41.6% 증가한 1조2703억원으로 편성하고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등 대부분 민주당 풀뿌리 조직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연대경제 구축 예산을 큰 폭 증액하고 있는 등 복지와 좌편향 이념 중심의 지출들이 대거 포함되어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내내 4%를 웃돈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비율은 2029년엔 58%까지 치솟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박에 따른 국방비 증액 등을 감안하면 60%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40년에는 8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채무(government liability)는 한국만의 국가재정법에 의한 좁은 의미의 국가채무개념이다. 대부분 국채발행 분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고 있는 재정통계 매뉴얼상에는 공무원군인연금 충당금, 정부기능 수행으로 지게 된 공기업부채, 국가보증채무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government debt)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114% 미국의 122% 일본의 234%는 모두 이 기준에 의한 것이다. 한국도 이 기준에 의한 필자개인의 추정에 의하면 금년에 벌써 130% 수준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2040년에는 장기저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일본과 같은 240%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한국은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재정을 건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더 늦어면 위험하다는 의미다.
포퓰리즘이란 한번 확산되면 프랑스나 남유럽처럼 되돌리기가 힘들다. 한국은 문재인정부들어 국가채무가 400조원 정도 큰 폭 증가한데 이어 이재명 정부들어서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600조원 정도 증가가 전망되고 있다. 국가채무는 물론 정부보증채무 공기업부채 등이 크게 증가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지금 더 이상 재정구조가 악화되면 재정위기를 면하기 어렵게 된다. 미국 셧다운의 교훈을 예사로 여겨서는 안된다.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트루스가디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