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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오정근 칼럼] 한미 간 신뢰 회복 통해 관세협상 해법 찾아야 한다

모처럼 외교의 호기인 APEC에서도 트럼프 못 만나나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는 점은 모든 국민이 주지하는 바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빈국에서 자원을 수입해서 가공해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다. 원유를 수입해서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하고 철광석을 수입해서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식이다. 이처럼 한국은 수출이 안되면 추락할 수 밖에 없는 나라다. 2024년 한국의 통관기준 수출은 6836억 달러 수입은 6318억 달러 무역수지는 518억 달러다.


더구나 외채도 금년 2분기말 기준 7356억 달러에 달한다. 그 중 1671억 달러는 1년 내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다. 장기외채 5685달러 중에서도 1년내 만기가 돌아오는 부분이 있어 이를 단기외채와 합한 외채를 유동외채라고 해서 약 300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이 정도는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인 준칙이므로 한국은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이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나라다. 이런 지표를 감안해 볼 때 한국의 수출은 더 증가해야 되는 실정이다.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4220억 달러(3분기말)에 불과해 만약 3500억 달러를 입금시키고 나면 720억 달러 밖에 남지 않는다. 외채상환 수입 등 턱없이 부족한 외환보유액 중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를 지불할 경우 한국은 곧 바로 외환이 부족해서 위기가 발생하는 외환위기로 직행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에 일본과 같은 상시무제한 통화스왑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여러 차례 협상을 통해 미국도 이런 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미 간의 외교다. 이처럼 한국경제의 생사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라면 계속 교착되고 있는 장관급 회담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정상 끼리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개인 간의 관계나 국가 간의 관계에는 신뢰가 기초가 되어야 한다. 최근 미국이 우파 대통령이 당선된 아르헨티나에 통화스왑을 제공한 의미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나라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더구나 한국은 제조업 강국으로 트럼프가 외치고 있는 MAGA, 즉 미국 제조업을 부활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슬로건에 중요한 국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시 썰렁했던 공항의전에 영빈관도 배정되지 않은데다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이나 공동기자회견은커녕 트럼프의 배웅도 없었던 점은 한미 정상 간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하게 했다. 이어진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시에도 한미정상회담은 불발되고 트럼프 대통령 주최 만찬에도 참석치 않은 일들이 이어지면서 한미 간의 외교, 특히 정상외교가 이대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이 와중에 미중간의 쟁패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문정부 시절 3불정책을 주장했던 강 전 장관을 주미대사로 지명해 다시 한번 백악관은 한미관계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3불(不) 정책’이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배치 금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편입 금지,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를 천명한 정책이다. 미국의 대중 정책에 배치되는 요소들이 적지 않은 정책들이다. 중국은 ‘3불(不) 정책’의 이행을 요구하며 최근까지 한국 정부를 압박해 왔다. 그러나 사드 배치 정상화 방침을 밝혀온 지난 윤석열 정부는 사드 배치가 군사주권 사안이란 점을 들어 중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한미 간의 불편한 관계가 10월 31일~11월 1일 경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20여 일 앞두고 한미정상회담 개최여부 불투명으로 까지 이어지며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에 한국이 다시 APEC을 주최하지만 한미 관세협상 등 시급한 과제가 산적함에도 한미정상회담 개최여부가 불투명해 지면서 흔치 않은 외교적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이재명 외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1일 개막하는 APEC 참석에 앞서 일본을 먼저 찾는다. 그는 퇴임 결정을 내린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후임이 확정되기도 전에 27일부터 2박 3일간 일본을 방문하기로 확정했다.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를 비롯, 누가 차기 총리가 되든 정상회담을 갖겠다며 일본을 신뢰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다카이치 총재는 여자 아베로 불리는 인물이다. 과거 아베 수상이 트럼프 1기 시절 골프 드라이브를 들고 당시 트럼프 당선자 사저를 방문해 축하하고 캠프 데이비스 산장에서 라운딩을 같이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러한 일미간 신뢰를 바탕으로 일본판 양적 완화 등으로 장기불황의 일본경제 회복을 시도한 것이 아베의 ‘세 개의 화살정책’이다. 트럼프가 왜 아직 총리에는 오르지 않은 다카이치에 신뢰는 보내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반면 한국 방문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현재로서는 29일 오전에 서울에 도착 후, 이날 저녁 한국을 떠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EC 부속 회의 비즈니스 라운딩에 잠깐 얼굴을 비출 뿐, 본 회의는 참석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짧은 1박 2일 체류’는 우리 정부의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의 대한국 압박 카드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對美) 투자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을 경우, 회담이 형식적인 약식 회동에 그치거나, 최악의 경우 정상 간 만남 자체가 무산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보다 APEC을 계기로 추진 중인 미·중 정상회담 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가능성에 쏠려 있다. 이 대통령이 사실상 외교 무대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형국이 아닌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중 정상회담의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는 11년 만에 방한하는 시진핑 주석을 국빈(國賓)으로 초청, ‘관계 복원’을 목표로 했다. 주한 중국 대사관이 한때 서울 신라호텔을 통째로 예약해 기대감을 높였지만, 곧바로 예약을 취소하며 국빈 방한은 물론 서울 방문 자체가 어렵게 되는 모양새다. “시 주석은 한중 관계 악화의 원인인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 문제에 대한 확실한 ‘선물’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이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생각해 시 주석이 국빈 방문할 명분이 없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오고 시 주석이 대만, 공급망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7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40분간 통화했지만, 한중 정상회담 형식과 의제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양국 정상의 만남도 APEC 회의장 주변에서 이뤄지는 짧은 약식 회담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도 불안 요소가 커졌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는 ‘여자 아베’로 불릴 만큼 강경한 우익 성향의 인물이다. 독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민감한 사안에서 과거 혐한(嫌韓)적 발언을 해온 그가 언제 다시 강경 노선으로 회귀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다카이치 총재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핫라인’조차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라고 보도되고 있다. 한국에 모처럼 미국과 일본 정상이 같은 시기에 방문하지만, 한·미·일 3국 정상회의는 의제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2005년 부산 APEC 때와 대조적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경주에서 열린 11·17 회담에서 ‘한미 동맹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공동선언(경주선언)’을 발표하며 북핵과 인권 문제에 대한 공동의 입장을 정리했다. 두 정상은 사이가 좋지 않고, 숱한 이견이 있었지만 부부 동반으로 불국사를 함께 둘러보기도 했다. 한중 관계도 성과가 있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같은 해 11월 16일부터 이틀간 국빈으로 방한했다. 노 대통령과 후 주석은 외교 장관 간의 핫라인 설치와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합의했다.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는 2007년을 ‘한중 교류의 해’로 지정한 것도 이때였다.


이 대통령이 미·중 갈등 속에서 길을 잃은 사이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주도적으로 외교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김정은은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쌍십절)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의 2인자를 초청하는 데 성공했다. 김정은은 중국의 리창 총리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과 열병식장에 나란히 서서 ‘북·중·러’ 연대를 과시했다. 얼마전 중국의 전승절에서 나란히 연대를 과시했던 북중러 연대의 재판이다.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내세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미·중 양국 모두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외교 고립’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빠진 듯하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처럼 찾아오는 외교의 호기인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대미국 3500억 달러 제공 등 한미 관세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되지 못할 경우 한국은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적으로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입을 우려도 있다. 우선 한미 간 신뢰회복이 급선무다. 한미간 신뢰회복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뢰회복을 토대로 한 한미 간 관세협상이 한국경제에 위기를 초래하지 않는 방향으로 타결되도록 보다 온 국력을 경주해야 할 때다.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트루스가디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