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가 충돌할 때는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이 일어난다. 19세기 후반기 전 세계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충돌과정에서도 그러했다. 제국주의가 접근해 올 때 첫 번째 반응은 저항이다. 우리로 치면 항일의병이 그것이다. 다음으로는 제국주의의 기술과 제도를 수용하되 정신과 문화는 자기 것을 지키자고 주장할 수 있다. 중국의 동도서기나 일본의 화혼양재 같은 것이 그러하다. 제국주의 본국에 조금 더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아예 문화나 사상까지도 본국의 긍정적인 모습을 차용하여 바꾸자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로 치면 이승만 계열이 그런 입장이었다. 그들을 개화파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이 미국과 협력하여 대한민국 건국 세력이 된다. 개화파는 지식과 기술을 숭상하고 시류와 세태에 민감하여 기회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80년대 386 운동권이 개화파를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갔다. 386의 핵심 이데올로기는 반미와 반일이었다. 그들은 반미를 위해 개화파를 사상적으로 공격하며 역사전쟁을 주도한다. 386에게 개화파 매도는 단순한 역사해석 문제가 아니라 정치투쟁의 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2. 박정희류의 민족주의는 근대적.산업적.부국적 성향이
[편집자 주] 바른언론 시민행동의 창립 기념 심포지엄서 발제를 맡은데 이어 본 매체 트루스가디언의 창간 칼럼을 쓴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22일 자 조선일보에 챗GPT에 관한 칼럼을 기고했다. 윤 교수는 칼럼에서 챗GPT 같은 AI 기술이 가져올 가짜뉴스 양산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언론의 역할, 국가의 지원 등을 강조했다. 윤 교수와 조선일보 측의 양해를 얻어 칼럼을 소개한다. [朝鮮칼럼 The Column] 챗GPT가 전해준 섬뜩한 경고 요즘 어딜 가든 챗GPT가 화제다. 미국의 오픈AI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이다. 웬 호들갑인지 궁금해 직접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서울대학교의 윤석민 교수를 아시나요?” “네, 윤석민 교수는 대한민국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이며, 컴퓨터 비전 및 인공지능 분야에서 국내외적으로 인정받는 학자 중 한 분입니다. 또한 인공지능 연구를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AI 전략 수립에도 참여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분과 다른 분이군요. 혹시 같은 대학교에 같은 이름을 가진 교수가 또 있나요?” “네, 대학교에 같은 이름을 가진 교수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저는
[편집자 주] 본 매체 트루스가디언의 모태인 시민단체 <바른언론시민행동> 운영위원인 함운경 씨가 최근 주간조선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가짜뉴스가 한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직접 경험해서, 이번에 좀 걸러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른언론시민행동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주간조선과 그의 허락를 얻어 인터뷰 기사를 전재한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서울대 물리학과 82학번으로 이른바 '삼민투' 공동위원장을 지내며 1985년 5월 서울 미문화원 점거 사건을 주도했던 함운경(59)씨의 현재 직업은 '네모선장' 대표다. 전북 군산에 위치한 횟집 '네모선장'에서 그는 직접 횟감을 손질하며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미문화원 점거 사건으로 6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그 이후에도 두 차례 더 투옥되며 반미, 반제국주의 운동에 헌신하던 그의 입에서 이제는 낯선 말이 나온다. "내가 1만3000원짜리 생선탕을 파는데, 나도 못 사먹을 것 같다" "인건비가 문제다.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하다가 나가니 그냥 내가 주방장 한다"…. 횟집 사장답게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를 가장 걱정한다. 지난 3월 10~15일까지 그와 수차례 통화한
한일 관계 악화로 한국 진보와 일본 보수가 동시 이득 지난해 영화관에 ‘한산’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거북선의 용머리가 왜군의 배를 박살내는 장면에선 너나 할 거 없이 박수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적어도 그때 만큼은 관객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문득, 한일관계의 미래에 과연 해법이 있을까 싶었다. 반일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일감정이 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내 마음 하나조차 어쩌지 못하는 게 인간인데, 민족의 집단적 체험 속에 아로새겨진 왜구의 침탈과 일제의 폭압이 어찌 쉬이 잊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관계 복원 의지는, 순전히 정치공학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위험하다. 반일감정을 건드릴 게 분명하고 지지율 하락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결단을 내렸다. 여권에서는 미래지향적이라고 평가했고 야권에서는 굴욕적이라고 평가했다. 아마도 정확한 평가는 그 중간 어디쯤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윤 대통령이 감수한 위험에 비해 야권의 반응이 매우 ‘안전하다’는 점이다. 민주당 인사들은 삼전도의 굴욕, 명성황후 시해, 을미사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가쓰라-태프트
'The truth about COVID-19(코로나19에 관한 진실)'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인 조셉 머콜라는 "코로나 자체보다 백신으로 인해 사람이 더 많이 죽었다", "과산화수소로, 코로나 등 모든 호흡기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며 책까지 펴내 백신 접종 거부를 선동했다. 그러고도 뒤로는 코로나 관련 건강 보조 식품 등을 팔아 이윤을 챙겼다고 한다. 가짜 뉴스 또는 허위 조작정보를 퍼트리며 돈벌이에 몰두한 것이다. 이런 허황한 말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겠지만 그의 SNS 팔로워가 360만 명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냥 넘어가기가 어렵다. 과학적 근거도 없는 허위 조작정보가 책과 SNS를 통해 빛의 속도로 퍼져나갔을 게 뻔하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 백신 접종을 받지 않았을 것이며 그로 인해 건강상 피해를 봤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한때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렸던 미국 바이오벤처 테라노스의 앨리자베스 홈스는 “피 한 방울로 수백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했다”라는 주장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거짓 신화는 법정에서 결국 사기극으로 판명이 났다. 한때 90억 달러에
우리가 흔히 저널리즘(journalism)이라고 통칭하는 공론적 소통은 민주적이고 성숙한 사회를 지켜내고, 또 역으로 그러한 사회가 지켜내야 할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사회성원들 간의 정상적 관계형성 및 상호작용은 차질을 빚고 사회의 제반 기능들은 효율성을 상실하며, 최악의 경우 마치 피가 돌지 않는 신체조직처럼 사회는 괴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필자가 언론학을 전공으로 택하고 미디어 연구자 및 언론정보학과의 교수로 재직해온 전 기간 동안 지금처럼 이런 생각에 골똘했던 적은 없었다. 이러한 저널리즘의 토대가 “팩트(fact)”다. 그것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건, 경제 권력에 대한 비판이건, 내지 논란을 빚고 있는 국가정책에 대한 의견제시건 저널리즘은 팩트에 기반한다. 팩트를 상실한 저널리즘은 선전·선동, 기망(欺妄), 사술(詐術)과 구별되지 않으며 그 존재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팩트야말로 저널리즘의 시작이자 끝인 것이다. 저널리즘이 위기를 겪고 있음은 기지의 사실이다. 현시대의 미디어가 제공하는 뉴스의 양은 희소한 몇 개의 채널을 통해 뉴스가 제공되던 매스 미디어 시대와 비교될 수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잘 모르거나 진실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민주공화국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45년에서 1953년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거의 없고 나이 많으신 선배들의 기억들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건국 과정서 만들어진 상처들이 너무 깊고 커서 먼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건국 과정서 주요 역할을 한사람에 대한 평가도 건국 이후 정쟁 속에서 흠이 생기면서 부당하게 공보다 과만 부각 돼버렸다. 그 틈에 우리 역사 특히 건국사에 대한 편향적인 시각이 자리를 잡아 지금은 우리 역사 인식의 주류가 되어 있다. 586 운동권이 끊임없는 선동과 선전을 통해 종북적 역사관을 확산시켜 많은 사람의 믿음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선거 후보로서 이육사 묘소에 가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 달라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라고 말했다. 당 대표였던 이해찬 씨는 회고록에서 “남한에서 친미, 기득
오래도록 전해져 오는 말 가운데, 중구삭금(衆口鑠金)이란 말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어느 일화에서 유래된 말인데, 풀이하자면, “무리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주나라의 24대 경왕 때 얘기다. 왕은 백성과 충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폐 개혁을 단행하여 새 동전을 주조했다. 구 동전은 녹여서 거대한 종을 만들었다. 그 비용이 백성들에게 전가될뿐더러 종을 만드느라 백성들의 원성만 높아진 셈이다. 그때 반대했던 신하가 한 말이, “故諺曰 衆心成城 衆口鑠金(고언왈, 중심성성 중구삭금)”이었다. “옛사람들 말에 따르면, 무릇 많은 백성의 마음이 모이면 견고한 성도 이루고, 또 백성들의 말이 많아지면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이 말은 대중 여론의 무서움을 상징하는 경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달리 이해하면, 대중 여론이 오도된 사실에 움직여서, 그릇된 말이 퍼져 나가는 경우에 대한 경고로도 볼 수 있다. 오도된 사실이란 다름 아닌 ‘가짜 뉴스’를 이름이다. 가짜 뉴스로 인해 이익을 누리는 자들이 있다면 공공의 적임이 당연하다. 그들은 가짜 뉴스로 대중을 선동해서 특정 개인의, 특정 집단의, 심지어 정부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특히 기
가짜뉴스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 유언비어와 노골적 거짓말이 새로운 언론 환경에서 뉴스의 형태로 전달되고 있다. 가짜뉴스의 전파행위는 언론의 사회적 기능에 반하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짜뉴스가 확대 재생산되는 체제가 강화하고 있다. 권력이 이러한 가짜뉴스를 악용하고 일부 언론이 동조하여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정치가 가짜뉴스에 매몰됐고, 우리 사회는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확산하는 자들에게 유인을 제공했다. 사실을 검증하지 않는 언론과 진영 논리에 빠져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쉽게 잊고 용서하는 환경이 가짜뉴스의 보금자리가 됐다. 지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가짜뉴스로 훼손됐다. 거짓말쟁이와 이를 포장해준 국회의원, 그리고 이를 사실인 것처럼 대서특필하고 반복적으로 보도한 언론은 가짜뉴스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가짜뉴스 공작에 가담한 국회의원은 집권 후 사면받았고, 아직도 국회에서 나라의 녹을 먹는다. 2017년 제19대 대선은 드루킹 사건이라는 여론조작 사건으로 오염됐다. 연루된 정치인은 사면받았고, 여론조작의 이익을 취한 사람은 사과하지 않았다. 거짓을 단죄하지 않는 역사 속에서, 가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