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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대호 칼럼]국힘의 패배는 정치적 서사와 정체성 상실로 '위대한 비전' 못보였기 때문

정치적 내러티브와 프레임 전략의 실패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인식 못 바꿔, '소주성' 등 문재인 정부의 과오도 까발리지 않아. 행동하는 강성 보수를 태극기 부대라고 폄하하며 절연. 국힘당이 누구인지 짚어야 위대한 소명 의식과 동지적 연대 나와.

<트루스가디언은 4.10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특별 릴레이 칼럼을 기획했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편집자주->

 

△국힘, 내러티브와 프레임 전략의 실패로 정체성을 상실

 총선, 대선 같은 큰 선거가 있으면 평가자들은 대체로 선관위나 방송3사 출구조사 데이터를 받아 권역별, 세대별, 직업별, 정당별, 후보(공천)별 투표율·득표율·무효표율 등의 상호관계와 상관관계를 살핀다. 이전 선거(대통령선거, 총선 등) 데이터와 비교하여 차이와 변화(흐름)도 살핀다. 여론조사(대통령 지지율, 정당 지지율, 후보 지지율과 각종 이슈에 따른 출렁거림 등)와 연계 분석도 한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이슈, 즉 4.10총선의 경우 국힘당의 악재로 작용한 도태우 장예찬 이종섭 황상무 비례공천 대파값 의대정원 이슈와 민주당의 악재로 작용한 대장동변호사 공천, 김준혁 양문석 등의 막말, 공영운 박은정 가족 등의 부당한 재산형성 이슈에 따른 지지율의 변화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따진다. 그러면서 몇 개의 가설을 내놓는데, 하나같이 검증이 불가능한 가설들이다. 시간이 가면 대부분 망각의 늪에 잠긴다.

 

 지난 30년 동안 국힘당 계열 정당은 선거 결과가 불만족스러우면 대체로 중도·스윙층의 마음을 얻지 못한데서 그 원인을 찾았고, 민주당 계열 정당은 핵심 지지층(진보)의 마음을 얻지 못한데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래서 보수(국힘당)는 극우와 거리두기를 하면서, 중도·스윙층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진보(민주당)은 진보적 가치와 정책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2020년 총선과 2024년 총선에서 연속으로 참패를 당한 보수(미래통합당·국힘당)는 또 다시, 극우와 거리두기를 하고 5.18 묘역 퍼포먼스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상당한 세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는 보수 열성 지지층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졌다는 목소리도 상당한 세를 형성하고 있다.

 

 선거 평가와 향후 국정 운영 및 정당 운영 기조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면서도, 많이 간과하는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인식이다. 이는 내러티브, 정체성, 프레임 전략의 실패로서, 정당 정체성을 아주 불리하게 형성한다. 이는 단지 대중적 이미지에만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당 구성원의 자의식(무엇을 위한 당인지)에도 악영향을 준다.

 

△'소주성' 등 문재인 정부의 황당한 경제 정책의 과오를 까발리지 않아

 배 고픈 상태로 백화점에 가면, 사고 싶은 물건이 눈에 많이 띈다. 그래서 백화점에 갈 때는 배 불리 먹고 가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윤석열정부 출범시부터 한국 경제는 미국발 고금리, 세계최고 수준의 가계부채(가처분 소득의 감소), 부동산시장 경색, 미국 중국 러시아발 경기침체와 고물가가 엄습하였다. 동시에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같은 황당 경제 정책의 후과도 밀어닥쳤다. 윤정부들어 각종 경제지표, 특히 민생지표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윤정부는 초기 1년 간 당연히 했어야 할 책임 소재 규명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전임자의 과오를 여간해서 까발리지 않는 관료적 미덕을 발휘했다고나 할까?

 

 인간은 돈(가처분 소득)이 고프고, 생활이 팍팍하고, 희망과 정의가 고프면, 정권의 작은 허물도 크게 보는 법이다. 다시말해 다양한 분야와 층위에서 첩첩히 쌓인 전(前)정권의 적폐 청산이 지체되면, 기대는 실망과 분노로 돌아오는 법이다.

 

 적폐 청산은 단지 사법적 단죄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사(승진 보직 조직 등)와 정부 재량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정책과 사업 등 부지기수다. 사실 이 하나만으로도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윤 대통령도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공히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무적 고려를 거의 하지 않고, R&D 예산 등 2024년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새만금 잼버리 요지경부터 지방관련 정책 사업 예산의 엄청난 낭비를 들춰내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부산엑스포 유치에 올인했다. 학령 아동이 급감한 초중등교육에는 예산 홍수를, 고등교육에 예산 가뭄을 초래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대해서는, 개정 시도는 커녕 분노조차 피력하지 않았다.

 

△서사와 정체성 상실로 민주당의 '비기득권 약자 대변' 내러티브에 속수무책

 결정적인 오류는 민주당의 큰 내러티브, 즉 서사와 정체성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것이 정치 운동장을, 특히 40대와 50대를 민주당 쪽으로 한참 기울어지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다.

 

  큰 내러티브의 핵심은 대중에게 비친 민주당과 국힘당의 정체성이다. 또 하나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고, 윤 정부와 국힘당의 소명이 무엇인지다.

 

  과거 국힘당 전신 정당들은 경제발전 대 발목잡기(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 등), 안정 대 혼란의 구도로 싸웠다. 하지만 1987년 이후 야당(민주당)은 반외세투쟁 서사, 도덕=정사(항일·양심 대 친일·기회주의)서사, 민주화(반권위주의)투쟁 서사, 한반도평화 서사, 촛불시민혁명 서사 등을 배경으로 민주당은 비기득권 피해자 호남 약자 소외자(노동 노조 여성 등)의 대변자로 자리 매김을 하고, 국힘당은 기득권 가해자 강남 강자 자본의 대변자로 자리 매김을 하였다. 민주당의 공천은 이 허구적 내러티브를 어느 정도 뒷받침하였다. 비례위성 정당도 제2촛불혁명(윤석열 탄핵)을 위한 정치연합으로 만들었다. 비례순번 투표 등으로 지지층의 참여도 끌어냈다.

 

 하지만 국힘당은 민주당을 압도하는 서사 내지 구도를 만들지 못하였고, 지지층의 참여도 전혀 끌어내지 못했다. 국힘당은 우익(우파)과 좌익(좌파), 남한과 북한의 대립 구도로 재단하려 하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늙은 구태 기득권과 소외된 비기득권, 강자(욕심쟁이)와 약자, 비양심과 양심의 대립 구도로 재단하였다. 약탈 위선 독선 부패 무능의 화신 문재인 정부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설득력있는 구도(프레임)일 것이다. 그런데 윤 정부와 국힘당은 이 허구적이고 불리한 내러티브와 프레임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보수와 국힘당은 1876년 개항이후 150년 간 한반도 근대화 문명화를 주도한 위대한 정치 세력이요, 친발전 친기업 친시장 친성밖서민(진짜 서민) 친청년미래 세력이라는 정체성을 전혀 인식하지도 과시하지도 못하였다. 한마디로 기업편, (노조나 공공부문이나 규제로 보호 받지 못하는) 성밖 서민편, 청년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필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금 시대가 1987년이후 점차 주류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 허구로 점철된, 반(反)대한민국적이고, 반(反)자유시장경제적이고, 반(反)발전적인 철학, 가치, 문화, 정책이 초래한 위기적 상황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시키지 못하였다. 원래 운동권 정치 청산 담론은 1987년 이후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 가치 문화 정책의 청산을 통한 새시대 창조 담론이었다. 그런데 몇몇 전대협 한총련 출신 정치인 퇴출 내지 운동권 특권 청산 담론으로 축소 왜곡되었다.

 

 비례 공천과 텃밭 공천은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대라면 괜찮을 것 같은, 착하고 얌전한 전문가 일색이었다. 한동훈의 정교하고 깔끔한 메시지에는 정작 중요한 서사와 정체성도, 변화와 개혁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담대한 비전도 빠져 있었다. 이는 한동훈의 책임만이 아니다. 윤 정부의 책임이자, 국힘당의 책임이자, 자유보수우파 논객의 책임이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서울역을 지날때면, 서울역과 더불어 ‘강우규 의거 터’라는 알림이 나온다. 남대문 시장을 지날때면, 남대문 시장과 더불어 ‘이회영 활동 터’라는 알림이 나온다. 대한민국 역사를 근대화·문명화 역사가 아니라 항일투쟁의 역사로 보게 하려는 ‘역사 공작’ 내지 ‘기억 공작’이 오세훈 시장 아래서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국힘당은 민주당이 집중 공격하는 허물을 줄이는 것이 전략 기조였다. 극우와 절연, 5.18 망언자 징계와 5.18 묘역 참배 퍼포먼스, 막말 후보 공천취소나 제명, 따뜻한 보수 강조 등. 극우와 절연 프레임을 덮어 쓰니, 민주당은 극우를 최대한 확장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행동하는 강성 보수를 태극기 부대라 폄하하며 극우로 싸잡았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그늘이 아니라) 빛을 강조하는 사람도 극우로 싸잡았다. 북한의 흉계에 대한 경계와 시장주의 법치주의 강조하는 사람조차 극우라고 비난하였다. 그래서 보수는 항시 수세적이었다. 민주당에게 심판관 역할을 주었기 때문이다.

 

 △국힘의 티끌같은 막말은 들보가 되고 민주당의 막말은 티끌이 돼버려

 민주당의 일각에도 간첩이나 종북주사파가 있지만, 민주당은 극좌와 절연을 얘기하지 않는다. 민주당의 일각에는 어마무시한 막말꾼들도 있지만, 막말 후보 징계를 요란하게 떠들지 않는다. 지역 구민이 평가할 일이라고 대범하게 넘어간다. 결과적으로 국힘당의 티끌 같은 막말은 들보로 되고, 민주당의 들보 같은 막말은 티끌처럼 된다. 이는 민주당은 큰 내러티브가 있고, 국힘당은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국힘당은 큰 내러티브에 입각한 정체성과 위대한 비전이 없으니, 도덕성이나 품격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막말 시비만 벌어지면 사과, 공천취소, 제명 등 도피와 손절을 능사로 삼으니, 지지층의 배신감은 필연이었다.

 

 왜 보수는 뺄셈정치에 능하냐고? 그것은 여전히 다수 주류 의식을 깔고서, 과거 하던대로 하되 진보가 지적하는 허물만 없애면 집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지부조화다. 왜 이념을 중시하지 않냐고?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면 다 됐고, 정책과 사업과 예산은 130만 직업공무원이 짜 놓은 것 받아서 실행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 현실과 자신을 설명하는 내러티브가 정립되면 내가, 즉 국힘당이 누구인지라는 정체성이 나온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면 상대가 누구인지를 규정하게 된다.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알면, 시대적 소명이 나오고, 정당은 위대한 소명을 이행하기 위한 동지적 결사가 되는 것이다. 선거 평가에서 반드시 짚어져야 하는 것이 정치적 내러티브와 정체성인 것이다.<사회디자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