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논평/칼럼

[김민의 엔터 비평] 산소 같은 여자, 이혜영애

 

국립극단의 연극 ‘헤다 가블러’로 13년 만에 연극에 복귀한 배우 이혜영과, 32년 만에 LG아트센터에서 같은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는 이영애가 같은 원작의 연극에서 같은 배역을 맡아 공연 중이다. 개성 있고 강한 배역을 주로 맡았던 이혜영과 달리 이영애는 ‘산소 같은 여자’라는 화장품 광고로 여성성을 강조하며 유명세를 탔기에 상반된 이미지의 두 배우가 같은 작품에서 같은 배역을 연기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같은 원작을, 같은 시기에, 이미지가 다른 두 배우가 연기한 ‘헤다 가블러’는 그 자체로 연극계의 이슈가 됐다. 특히 이 작품이 한국에 초연됐을 때 주연을 맡았던 이혜영 배우가 다시 같은 배역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이혜영 배우의 출연작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배우로 평생을 살았던 그녀는 SBS에서 앵커로 뉴스를 진행한 적도 있다. 최근작 영화 ‘앵커’에서 맡은 역은 딸을 앵커로 성공시키기 위해 집착하는 어머니였지만, 현실의 이혜영은 실제 앵커 경력이 있는 유일한 여배우다. 뮤지컬로 시작해 영화, 드라마, 뉴스까지 섭렵했던 이혜영 배우는 아직 현역임을 증명하듯 연극은 물론 최근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민규동 감독의 영화 <파과>는 배우 이혜영이 품고 있는 시간의 감정, 얼굴의 무게, 그리고 말하지 않는 윤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무대 위에서 권태와 욕망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던 ‘헤다’를 연기한 이혜영은, 영화 속에서는 침묵으로 폭력을 기록하는 늙은 여성 킬러 ‘조각’이 되었다.

 

두 무대가 교차하는 지금, 이혜영이라는 배우의 어떤 얼굴이 이야기의 중심에 설지 궁금하다.

 

구병모의 소설 『파과』는 민규동 감독의 손을 거쳐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2013년 발표된 이후 뮤지컬로도 공연됐고, 이제 스크린 위에서 숨을 쉰다.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국제적인 이목을 끌어낸 이 작품은, 겉으로는 킬러 장르의 외형을 갖췄지만, 실상은 한 노년 여성의 조용하고도 처절한 투쟁기를 정제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 파과(破果)

“우리 모두 깨지고 상하고 부서져 사라지는 파과(破果)임을 받아들일 때, 주어진 모든 상실도 기꺼이 살아내리라 의연하게 결심할 때, 비로소 파과(破瓜)의 순간이 찾아온다.”

 

‘파과(破果)’는 과일이 너무 익어 스스로 터지는 상태를 뜻한다. 더 이상 누군가가 훼손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무게로 무너지는 시점이다. 그 안에는 강제성도, 의도도 없다. 오직 삶의 한 주기가 도달한 정점이라는 자연의 알림만이 존재한다. 이때의 ‘파과’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이라는 선언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익어 버린 존재가 새로운 상태로 진입하는 문턱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파과(破瓜)’라는 다른 뜻의 한자어는 여성의 나이 열여섯을 뜻한다. 이는 생물학적 성숙과 사회적 여성성의 기점을 상징하며, 극 중 조각이 처음으로 살인을 시작했던 나이와 겹친다.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다른 궤도로 접어드는 지점이다. 결국 ‘파과’는 삶의 시작과 끝, 개화와 붕괴를 동시에 품은 말이 된다. 꽃이 열매가 되고, 열매가 터지듯 인간 역시 어떤 결정적인 시점을 지나며 새로이 재편된다.

 

감독은 이 개념을 절제된 시선과 느릿한 프레임으로 시각화한다. 대사는 절제되고, 장면은 침묵을 품고 흐른다. 영화는 우리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한 인간이 퇴화된 몸을 지닌 채 감각을 잃고, 더 이상 사회로부터 ‘쓰임’을 요구받지 않을 때도 여전히 존엄할 수 있는가?

 

<파과>는 액션 누아르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것은 껍질일 뿐이다. 실상은 존재의 유통기한과 인간 존엄 사이의 균열을 응시하는 깊고 윤리적인 사유의 공간이다. 누군가를 죽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끝났다고 여겨진 생이 어떻게 다시 살아질 수 있는가에 대한 조용하고도 단호한 증언. 그것이 <파과>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다.

 

◯ 조각, 늙은 여성 킬러의 초상

“그녀는 65세의 킬러였다.”

이 단 한 문장만으로도 영화 <파과>는 기존 한국 서사의 문법을 완전히 비껴간다. 이혜영이 연기하는 주인공 ‘조각’은 킬러 기업 ‘신성방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렸던 인물이다. 수십 년간 감정 없이 타인을 제거하며 생존해 왔지만, 이제는 감각을 잃고 천천히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현장에 나타나지만, 이미 내부에서는 한물간 존재로 간주된다.

 

조각의 서사는 1975년의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혹한의 거리에서 쓰러졌던 한 소녀는 우연히 킬러 ‘류’를 만나 구제되고, 그날 이후로 방역이라는 이름의 살인 기술을 배우며 생존을 이어 간다. 그렇게 그녀는 킬러로 살아남았고, 이윽고 ‘대모님’이라 불리는 존재로 군림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전설적 지위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버려진 기록이 되어 간다.

 

이 인물의 장대한 시간을 이혜영은 침묵으로 연기한다. 대사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은 그녀의 얼굴과 주름, 느릿한 걸음걸이,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그 모든 몸짓이 ‘조각’이라는 인물을 조각해 낸다. 영화는 이 배우의 얼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단지 ‘나이 든 킬러’가 아니라 ‘존재를 통째로 살아낸 한 여성’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동안 한국 영화 속 노년 여성은 대개 주변화된 인물이었다. 누군가의 어머니, 병자, 혹은 정서적 배경으로만 존재해 왔다. <파과>는 이러한 익숙한 역할에서 벗어나, 늙은 여성을 하나의 서사적 주체로 당당히 내세운다. 이혜영의 얼굴은 영화 속에서 총보다 강하고, 말보다 섬세한 무기처럼 기능한다. 그녀의 무표정은 감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겹겹이 쌓인 시간과 침묵의 층위를 드러낸다.

 

◯ 살해와 구원 사이, 윤리의 각성

영화 속에서 조각은 덤덤하게 자행하던 살인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그 행위를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킬러의 행동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이미 멈춰 있다. 감각의 마비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부활에 가깝다. 사람다운 온기가 되살아난 것이다.

 

이 변화는 수의사 강 선생과 만나면서 점차 강해진다. 그는 무뎌진 감정을 자극하고, 오랜 시간 잊혔던 인간적인 교감의 흔적을 끌어올린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몸을 돌보는 아주 사소한 행위들이 조각에게는 낯설고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조각은 ‘죽이지 않는 삶’, 곧 ‘살(殺)’이 아닌 ‘생(生)’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존재의 전환은 언제나 대가를 동반한다. 조각의 변화는 질서 전체를 흔드는 파열로 이어진다. 한때 스승으로 받들었던 조각이 더는 예전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투우는 그 결정을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분노로 응답한다. 결국 두 인물은 킬러 간의 대결이 아닌, 상반된 윤리 체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파과>는 이 대립을 통해 말한다. “쓰임이 끝난 순간에도 삶은 존재하며, 여전히 존엄하다.” 그것이 <파과>가 남기는 고요한 메시지다.

 

김민 전문기자 theMedia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