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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오정근 칼럼] 케인즈 80주기에 부쳐

올해로 거시경제의 아버지인 케인즈 80주기 및 '일반이론' 출간 90주년
유효수요 진작 위한 정부 개입 여지 제공했지만 재정정책보단 통화정책 중시
'일반이론', 오늘날에도 거시경제학의 중심축… 연구 통해 한국경제학 정립의 전기 마련되길

1936년 런던의 서점가에 등장한 불과 5실링짜리 한 권의 단행본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으니, 그것이 다름 아닌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쓴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이었다. 『일반이론』은 출간되자마자 중판을 거듭하면서 현대 경제학의 체계와 방향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다. 케인즈는 1883년 6월 영국 케임브리지의 하아비가(街)에서 태어나 명문 이튼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시장경제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편,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올해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면서 케인즈가 『일반이론』을 출간한지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케인즈는 『일반이론』 출간 10년 후인 1946년 4월 21일에 서거해 바로 오늘이 케인즈 80주기다. 『국부론』 250주년 『일반이론』 90주년 그리고 케인즈 80주기를 맞이하는데도 한국은 수천 명 경제학자들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조용하기만 한 것이 이채롭기까지 하다. 필자가 간단히 케인즈 80주기에 부치는 졸고를 남기고자 한다.

 

『일반이론』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비판으로부터 출발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완전고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실 대공황 이전 영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전 세계에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물자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중요 과제였기 때문에 미시경제학은 발달했지만, 고용 문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발생한 대공황의 고용 문제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케인즈는 완전고용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특수한 경우라는 점에서 고용 문제에 역점을 둔 자신의 이론을 『일반이론』이라고 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고용이론은 실질임금은 노동의 가격이므로 실업이 존재하면 실질임금이 떨어져서 노동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공급은 줄어들어 노동은 항상 완전고용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즈는 신고전파의 주장을 비판하며 실업은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유효수요란 기업가가 실제로 받게 되는 매출액을 말한다. 기업가는 매출액, 즉 유효수요를 예상하고 그 예상을 토대로 생산활동에 필요한 노동을 고용하게 된다.

 

만약 예상되는 매출액, 즉 기대 유효수요가 공급을 상회하게 되면 기업가는 고용을 더 늘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공급이 항상 유효하게 수요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공급이 모두 유효하게 수요된다 하더라도 이 경우가 반드시 노동시장의 완전고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효수요의 수준이 노동시장에서 고용을 완전히 흡수하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케인즈가 주장하는 유효수요 원리의 핵심이다.

 

고용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유효수요의 진작이 중요하다. 또한 유효수요의 진작을 위해서는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이 케인즈의 견해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투자활동을 통해서 고용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창출된 소득에 의해서 소비활동이 이루어져 투자와 소비의 합으로 나타나는 유효수요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케인즈에게 있어서 기업가의 투자활동은 자본주의 경제활동의 원동력이다. 여기서 국민소득 항등식이 도출된다.

 

케인즈는 이자율을 화폐적 현상으로 보았다. 화폐시장에서의 화폐, 즉 유동성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균형시키는 역할이 이자율이라는 것이다. 저축은 소득에서 소비하고 남은 부문이다. 이 저축을 사람들은 이자를 가져다주는 금융자산의 형태뿐만 아니라 이자는 없지만 즉각적인 유동성이 보장되는 화폐의 형태로도 보유하게 된다. 이자를 포기하고 화폐를 보유하게 되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고자 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유동성을 보유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현상을 ‘유동성 선호’라고 했으며, 이자율은 근검절약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유동성을 포기한 데 따른 대가라는 것이 케인즈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케인즈의 주장이 갖는 의의로는 우선 거시경제학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케인즈에 의해서 비로소 거시경제학의 체계가 정립되고 그를 토대로 계량경제 분석 등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케인즈는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유효수요 진작을 위한 정부 개입의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흔히 케인즈를 방만한 재정 정책의 원인을 제공한 학자로 잘못 비판하기도 하지만 케인즈는 그의 『일반이론』 중 한 문단도 재정 정책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는 통화정책을 중시하고 있다. 『일반이론』이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인 이유다.

 

케인즈가 그의 『일반이론』을 통해 종래의 신고전파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거시경제학의 체계를 제시한 후 케인즈 경제학은 다양하게 해석되고 발전되면서 여러 케인즈학파를 형성해 왔다. 따라서 오늘날 단순하게 케인지언(Keynesian)이라고 할 때는 어떤 학파의 케인지언을 의미하는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케인즈학파 중에서도 케인즈 경제학을 신고전파의 방법론에 의해 해석한 샤무엘슨 등 신고전파 케인지언(Neo-Classical Keynesian)과 케인즈의 『일반이론』 원칙에 충실한 원칙론자인 후케인지언(Post Keynesian), 그리고 가격을 고정된 것으로 가정하고 수량조정 메커니즘을 토대로 불균형 거시경제학을 주장하는 신케인지언(Neo Keynesian)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일반이론』 발간 90주년이자 케인즈의 80주기가 되는 해이다. 이상에서 개관해 본 바와 같이 그동안 케인즈 경제학은 그야말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발전되면서 변천해 왔다. 대체로 1970년대 초반까지는 신고전파 케인즈경제학이 거시경제학의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각국의 경제 정책에도 폭넓게 응용되면서 세계 경제의 지속적인 고도성장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 발생한 석유파동은 세계경제를 인플레이션의 와중으로 몰아넣었고 그 결과 그때까지 주류 거시경제학의 위치를 차지해 왔던 신고전파 케인즈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거시경제학 체계에 대한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인플레이션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된 가운데 물가 안정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고 있는 통화주의(Monetarism)가 풍미하게 되었는가 하면 신고전파 케인즈경제학의 주요 정책수단이었던 총수요 관리 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정책무력성 가설(policy ineffectiveness hypothesis)을 표방하는 새고전파 거시경제학(New Classical Macroeconomics)이 등장했다.

 

그러나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 대처 행정부의 주요 정책수단으로 원용되면서 1970년대 거시경제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던 통화주의는 1970년대 말과 1980대초에 심각하였던 영미의 실업문제를 설명하는 데는 역시 한계를 보였다. 통화주의에 의하면 고용은 자연실업률 수준에서 안정되었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학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벤 버냉키(Ben Bernanke)는 양적 완화(QE)라는 전대미문의 통화정책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이미 경제가 극도의 불황 속으로 추락한 상황이라서 제로금리를 도입한 가운데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통화량을 무제한으로 푸는 정책을 양적 완화라고 한다. 중앙은행이 국채·모기지 채권 등을 매입해 통화량을 늘리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2008년 11월 1차 QE를 시작으로 2010년 2차, 2012년 9월 3차 QE가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버냉키는 ‘헬리콥터 벤’으로 불리며 과감한 부양책을 주도했다.

 

QE는 위기에 처했던 금융시장의 안정과 경기 회복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버냉키는 2009년 세계를 구한 인물로 미국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 마침내 2022년 스웨덴 왕립과학 아카데미는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며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의 정책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극도로 높아진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유동성을 보유하고자 하는 경향, 즉 유동성 선호가 이례적으로 높아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특단의 통화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경제학계를 풍미해 왔던 통화주의가 퇴조하고 케인즈가 다시 돌아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사실 1970~80년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케인즈학파의 팽창정책보다는 1차·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급격한 석유가격 인상에 더 큰 원인이 있었다. 그런데도 1차·2차 석유파동에 주로 기인했던 인플레이션이 케인즈학파의 팽창정책에 기인했다는 평가가 통화주의학파를 중심으로 쏟아지면서 경제학도 통화주의학파가 지배적이 되고 통화주의학파의 기본 가정인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여러 이론들이 등장하면서 현실 문제에 제대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해 온 문제점을 노정해 왔다. 이런 가운데 버냉키 연준의장의 양적 완화 정책이 등장하면서 다시 케인즈경제학이 중심 무대로 복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면서 백가쟁명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오늘날 거시경제학은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다. 지난 1936년 발간된 이래 거시경제학의 체계를 처음으로 제시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온 케인즈 경제학은 9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거시경제학의 중심축으로 미래의 거시경제학 체계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케인즈 80주기와 『일반이론』 발간 9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다시금 케인즈 경제학에 대한 연구는 물론 다양한 패러다임의 경제학이 활발하게 소개되어 한국경제학 정립의 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트루스가디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