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회가 초당적 논의를 통해 연금개혁 방안을 법률로 확정할 때까지 최선의 지원을 하겠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시정연설을 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중 연금개혁 안에 대해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들과 80여 차례 회의를 통해 과학적 근거를 축적했으며, 24번의 계층별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국민 의견을 경청하고, 여론조사도 꼼꼼하게 실시했다”라며 “이렇게 해서 마련한 방대한 데이터는 국민연금 모수 개혁을 포함하여 연금제도 구조개혁을 위해 요긴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국회가 초당적 논의를 통해 연금개혁 방안을 법률로 확정할 때까지 적극 참여하고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면서 연금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앞서 지난 13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는 11개월간 국민연금의 재정추계를 바탕으로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급 연령 등이 바뀌는 시나리오가 담긴 최종 보고서를 복지부에 전달하며 활동을 마쳤다. 최종 보고서에는 24개의 연금개혁 시나리오와 그에 따른 재정 전망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이를 참고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이었던 모수 개혁을 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다. 조 장관은 “그동안 개혁 과정을 보면 정부가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수준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해왔는데, 제대로 성공이 이뤄지지 못했다”라면서 “이번에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는 것보다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에 참여연대, 양대 노총 등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이번 종합계획안에 대해 “단일 안은 커녕,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등의 핵심적 숫자는 아무것도 없고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되는 맹탕 연금개혁안”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3대 개혁으로 연금 개혁을 제시했음에도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고 연금 개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도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연금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는 맹탕 연금개혁안”이라며 “자신들의 무책임과 무능함을 고백했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전 정부 탓을 하며 본인은 다를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정부의 이번 발표는 문재인 정부가 4개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만도 못한 것으로 사실상 연금 개혁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윤 대통령은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 “연금개혁은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 결론적인 숫자만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연금 개혁의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과거 정부는 연금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 없이 4개 대안을 제출해 갈등만 초래했다”며 “우리 정부는 이러한 전철을 반복하지 않고,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착실하게 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께 드린 약속을 지키겠다”며 “연금개혁은 법률 개정으로 완성되는 만큼, 정부는 국회의 개혁 방안 마련 과정과 공론화 추진 과정에도 적극 참여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심의·의결하고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여당에서는 야당의 비판에 대해 "문재인 정부 때는 하는 시늉만 하며 손놓고 있던 연금개혁에 대해 지금 와서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분위기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기자들에게 "문재인 정부는 보험료율과 소득채체율을 인상해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추는 수준의 '반쪽자리 개혁안'을 만드는 데 그쳤고, 그마저도 추진하지 않았다"면서 "윤석열 정부는 지속 가능한 연금 개혁을 하겠다는 발전된 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초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었다. 당시 초안에는 소득대체율을 현행 국민연금법 규정 그대로 두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단계적으로 15%까지 올리는 방안이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은 이후 전문가의 복수 자문 안을 받았지만 사실상 이를 반려하고 현행 유지를 요구하는 사용자 측과 소득보장강화를 주장한 노동자 측의 개혁안을 모두 포함한 4가지 방안을 국회에 떠넘기다시피 제출했다.
제1안은 현행 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를 유지하는 안이였고, 제2안은 기초연금 강화 안으로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과 보험료율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현행 25만 원에서 2021년 30만 원, 2022년부터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이였다. 제3안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노후 소득 보장을 확충하는 안으로 소득대체율을 현 수준인 45%로 동결하여 40%까지 저하되지 않도록 하고, 보험료는 2021년부터 5년마다 1%씩 높여 2031년에 12%가 되도록 인상하는 방안이이였다. 제4안은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을 좀 더 강화하는 안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 조정하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21년부터 매 5년마다 1%씩 인상하여 2036년에 13%까지 인상하는 방안이였다.
이후 국회에서도 연금개혁 이슈는 '뜨거운 감자'로 인식돼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개혁은 무위로 돌아갔다.
국민연금법 시행령은 복지부가 5년마다 재정계산을 하고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해 그해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심민섭 기자 darklight_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