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문직 취업비자(H-1B) 발급 수수료를 100배 인상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하자, 언론은 이에 대해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경제는 “’아메리카 퍼스트’의 폭주”라고 비판했고, 매일경제는 미국의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공장 대규모 이민 단속 사건의 해결책으로 추진하던 정부가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서울경제는 미국으로의 인재 유출이 적어질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인재 유치를 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경제는 22일 <3500억달러 강요, 비자 100배 인상…'갈수록 태산' MAGA의 폭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단순한 행정 절차상 변화를 넘어 미국 노동시장 보호라는 명분 아래 이뤄진 ‘아메리카 퍼스트’의 폭주”라며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전문 직종을 위한 H-1B 비자 수수료 폭탄은 미국 내 기업에 외국인 대신 자국 인력 채용을 압박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사설은 “인도, 중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겠지만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미국 취업을 준비해 온 우리 젊은이에게도 영향은 불가피하다”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이뿐만 아니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는 35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대미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요구는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라며 “동맹국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돈만 밝히는 나라가 돼가는지 보수·진보를 떠나 혀를 차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매일경제도 이날 <전문직 비자수수료 100배 인상, 美 투자기업 불이익 막아야>라는 사설에서 “H-1B 비자는 구글·아마존·테슬라 등 빅테크 기업들의 인재 수혈 통로였다는 점에서, 정작 피해는 미국 기업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기업도 비용 후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백악관이 매년 비자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신규 비자 신청 때만 부과하는 일회성 수수료라고 말을 바꾼 것도 기업 반발을 의식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설은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를 계기로 진행 중인 한미 간 비자 협상에 돌발 변수가 등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우리 정부는 한국인 전문 인력을 위한 별도 비자 외에도 기존 H-1B 비자 내에서 한국인 쿼터 확대를 요구 사항의 하나로 고려했는데, 이번 조치로 전략 변경이 불가피해졌다”고 우려했다.
이어 “비자 제도가 경직되고, 비용 부담이 커진다면 기업의 대미 투자 의지가 약화할 수 있음을 미국 정부도 인식해야 한다”면서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주요 산업 기술 전수를 원하면서 한국 노동자의 체류 지위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서울경제는 <美비자 수수료 100배 폭탄, ‘고급 인재 유입책’ 병행 대응을>이라는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은 이 비자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해왔다”며 “이번 조치는 무역 협상으로 얻은 투자를 미국인 고용 확대와 연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 내 빅테크 기업들 역시 혼란에 빠졌다. 혁신의 통로를 스스로 차단해 중국을 이롭게 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잇따른다”면서 “강성 지지층에 굴복한 이민정책이 미국을 후퇴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전했다.
사설은 “이번 조치로 핵심 인재의 미국 유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위험하다”며 “중국은 ‘천인계획’에 이은 ‘치밍(啓明)계획’을 통해 AI·반도체 등 전략기술 인재 귀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STEM 인재 지원을 대폭 강화해 ‘브레인 투 코리아’에 속도를 높여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심민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