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KT 해킹 사태에 쓰인 것과 같은 불법 해킹 장비들이 온라인 해외 직구를 통해 국내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도 미비와 인력 부족에 따른 국내 통관에서부터 인증·유통 관리망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해외 직구가 해킹 장비의 주된 유입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전자상거래 통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자상거래를 통한 통관 건수(해외 직구)는 2022년 9612 만 건에서 지난해 1억 8118만 건으로 약 1.9배 급증했다.
2025년 8월 말 기준 1억 2377만 건을 넘어 연말에는 전년 수준인 1억 8000만 건을 훌쩍 상회할 전망이다. 불과 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문제는 알리익스프레스·알리바바닷컴·테무 등 중국계 직구 플랫폼을 통해 차량용 고출력 장비부터 배낭형·휴대형 초소형 기지국 등 불법 통신장비가 국내로 들어와도 통관 단계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세청은 유무선 통신장비를 HS 코드(품목번호)로 세분화하지 않고 ‘유무선통신기기’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별기기 식별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통신장비를 인증하는 과정에도 빈틈이 있다는 게 김 의원실 설명이다. 관세청은 해외 직구로 반입되는 방송통신 기자재의 경우 간이통관이 아닌 수입신고를 의무화하고, 관련 법령상 수입요건 충족 여부를 심사해 최종 통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파법 시행령에 따르면, 개인이 자가 사용 목적으로 1대만 반입하는 경우 ‘적합성 평가 면제 대상’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법을 우회해 불법 해킹 장비를 들여올 수 있다.
해외 직구로 반입된 통신장비는 이후 국내 유통 단계에서도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방송통신 기자재 등의 적합성 평가에 관한 고시'에서 신고 없이 개설 가능한 무선설비로 분류되어 일정 기간(수입 후 1년 경과)이 지나면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재판매도 가능하다.
이를 관리·감독 인력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다. 관세청 특송통관 전담인력은 2022년 304명에서 올해 8월 기준 321명으로 17명(5.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전자상거래 통관 규모가 2배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인력 확충은 정체나 마찬가지다.
특히 전체 특송화물의 60%를 처리하는 인천공항세관의 전담 인력은 2022년 217명에서 올해 8월 기준 204명으로 오히려 13명 감소했다. 불법 방송통신 기자재 조사 인력도 전파관리소 11명(본부 1명, 지역사무소 10명)에 불과해 국내 유통 모니터링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다.
김장겸 의원은 “해외 직구를 통해 불법 통신장비가 국내에 유입되고 있지만, 현행 제도만으로는 이를 걸러낼 수단이 없다”며 “관세청·과기정통부·방통위가 협력해 통관, 인증, 유통 전 과정을 통합 점검하고 HS 코드 세분화 등 실효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