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市場)'이라는 단어는 요즘 썩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경쟁은 냉혹하고, 이윤 추구는 탐욕처럼 보이며, 실패한 자는 그 자리에서 도태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자유시장이 정말 좋은 것이라면, 왜 그렇게 잔인해 보이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250년 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잠시 돌아가야 한다.
1759년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보다 17년 앞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미스를 보이지 않는 손의 경제학자로만 기억하지만, 그는 본래 도덕철학자였다. 그리고 그가 평생 씨름한 핵심 질문은 하나였다. 이기적인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공감이라는 이름의 시장 원리
스미스의 답은 공감(sympathy)이었다. 그런데 그가 말한 공감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감정이입이나 연민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타인의 처지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능력, 즉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내면의 거울이었다.
시장은 바로 이 공감의 원리 위에서 작동한다. 빵집 주인이 매일 아침 빵을 굽는 것은 소비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맛, 가격, 신선함을 상상하지 않고서는 장사를 이어갈 수 없다. 타인의 필요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은 시장에서 생존하지 못한다. 스미스가 발견한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이기심을 통제하는 시장의 규율이었다.
경영학의 언어로 옮기면, 이것은 고객 중심(customer-centricity)의 기원이다. 좋은 기업가는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고객의 필요에 먼저 귀 기울인다. 스미스가 도덕철학자로서 설계한 그 원리가 250년 뒤 경영 전략의 핵심이 된 것이다.
가격이라는 도덕적 신호
자유시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가격이 냉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격은 냉혹한 것이 아니라 정직한 것이다. 가격은 지금 이 순간 사회 전체가 어떤 자원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압축해서 전달하는 신호다. 어떤 중앙 계획자도, 어떤 알고리즘도 수백만 명의 선호와 필요를 동시에 반영하는 이 신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물 가격이 오른다. 이것이 착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멀리서 물을 운반해 올 수고를 감수하는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과정이다. 가격통제가 시작되는 순간, 그 신호는 사라지고 물은 선반에서 사라진다. 선의가 시장보다 똑똑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스미스 이후 경제학이 반복해서 확인한 교훈이다.
이것은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과에 연동되지 않는 보상 체계, 손실을 감추는 회계 관행, 시장 반응을 외면한 제품 개발 등 이 모든 것은 내부의 가격 신호를 왜곡하는 행위다. 건강한 기업은 내부에서도 투명한 신호 체계를 유지한다.
자유시장의 진짜 전제 조건
그러나 스미스는 시장만능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반드시 도덕적 토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약이 지켜지는 사회, 사기와 독점이 억제되는 제도, 그리고 무엇보다 공정한 관찰자를 내면화한 시민들 등 이것이 없는 자유시장은 단순한 약육강식의 장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자유시장에 대한 불신이 깊은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종종 시장의 외피는 있지만 도덕적 규율이 작동하지 않는 가짜 시장을 경험해 왔다. 정경유착, 불투명한 지배구조, 진입장벽을 쌓은 독과점 등과 같은 현상은 자유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자유시장이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 구조적 왜곡이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을 먼저 쓰고 《국부론》을 나중에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덕이 먼저고 경제가 나중이다. 인격 없는 기업은 단기적 이익을 낼 수 있어도 지속가능한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 경영 캠퍼스가 첫 번째 주제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유시장은 탐욕을 방치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타인의 필요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를 솎아내고, 정직한 신호에 응답하는 자를 살아남게 하는 도덕적 선발 기제(機制)다. 애덤 스미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이다.
김병헌 자유시장연구원 부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