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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특별기고-이병태 칼럼] 여당의 4.10 총선 대패...보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트루스가디언은 4.10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특별 릴레이 칼럼을 기획했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편집자주-

 

지난 4월 10일 22대 총선이 보수 지지층의 기대와 달리 참패로 끝났다. 지난 대선의 승리와 지방선거의 압승 이후의 총선이었지만 승리를 이어가지 못하고 패배를 반복했다.  

일각에서는 21대보다 의석이 늘어났으니 패배가 아니라며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21대 총선은 대통령이 탄핵된 후 야당으로서의 패배였기 때문에 이번 총선 결과와 비교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전체를 여소야대에서 보내야 하는 첫 대통령이자, 여소야대에서 시작한 대통령으로서 총선에서 이를 뒤집지 못한 첫 사례를 만들었다는 데에서도 이번 총선의 패배가 얼마나 예외적이고 가혹한 결과를 불러왔는지가 자명하게 드러난다. 

 

“이해할 수 없다”

입시 비리로 실형을 받은 조국이 급조한 정당이 비례정당 지지율에서 양당을 위협하고, 전과가 수두룩한 이재명 대표의 ‘비명횡사’의 공천 전횡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던 민주당이 선거에서 크게 승리한 것에 대해 보수권 일각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외교적이고 점잖은 표현이고, 사회주의적 분배를 강조하고, 범죄자들이 주도하는 “이조조선(李曺朝鮮)”을 지지하는 야당 지지자들은 지적으로 무엇인가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도널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0년 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과정에서도 미국의 언론과 식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다. 그는 여성에 대한 막말 성폭력 의혹을 받았고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국민이 존경하는 전쟁 영웅인 존 맥케인 상원 후보의 군 경력을 조롱했고, 온갖 금기를 무시했다. 그러나 '악동은 곧 몰락할 것'이라던 정치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는 힐러리를 물리치고 대권을 잡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트럼프는 온갖 구설수를 만들고, 전직 대통령으로는 기밀 문서 은닉을 포함해 처음으로 89개가 넘는 위반 사항으로 4개의 형사 범죄로 기소됐다. 또한 자산 가치를 부풀려 불법적으로 융자를 받았다는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불륜을 숨기기 위해 뒷돈을 주며 입막음을 했다는 범죄와 성폭력을 했다는 폭로를 한 작가의 명예를 훼손한 죄로 유죄를 받았다. 바이든에게 패배한 대선에서 부정 선거로 패배했다며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160개가 넘는 재판을 걸었다. 그러나 폭동들의 의회 난입을 유도했다는 혐의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비난을 받는 트럼프는 이번에 공화당의 압도적 찬성으로 대선 후보로 당선됐다. 그리고 그는 현직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우리의 보수권과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전문가들과 식자들을많은 설명에 설명을 더하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트럼프는 프로레슬링의 정치를 한다

그 설명들 가운데 하나는 트럼프와 이조(이재명, 조국)는 전통적인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정치적 동물들이라는 견해다. 트럼프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해서 씽크프로그래스(ThinkProgess)의 편집장인 주드 레검 (Judd Legum)은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가장 유명한 에세이인 “레슬링의 세상”에서 설명을 찾고 있다.

 

권투는 스포츠이고 규칙에 따라 싸우며 승패가 갈린다. 프로 레슬링은 스포츠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본질은 엔터테인먼트와 연출이다. 권투에서 반칙을 범하면 실격패를 당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에서는 순간적으로 관객의 흥미를 자아낼 수 있으면 반칙도 그만이다.  

 

레검은 선거 운동에서 트럼프는 프로레슬러처럼 행동하고, 트럼프의 상대 후보들은 권투 경기처럼 행동한다고 분석했다. 다른 권투 선수들이 다음 잽을 가늠할 때, 트럼프는 금속 의자로 그들의 머리를 내리쳐버리는 식이다. 전혀 다른 룰을 가진, 새로운 정치인의 등장이다. 

 

조국과 이재명, 그리고 막말 대행진을 하고 선동적 거짓말을 일삼는 야당의 후보들이 선거에서 당선되고 게다가 그런 정치인들이 다선 의원들로 건재한 것에 대해 우리 보수권은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들은 프로레슬링을 하고 있다. 관객들은 그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 바뀐 룰을 보수권은 인식 못 하고 품위와 도덕성 타령만 반복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못한다?

또다른 설명은 사회가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고(정치적 양극화), 그 결과 진영 정치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즉 후보의 능력이나 됨됨이, 정책이 아니라 우리 편인가 아닌가로 투표 행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일부는 소셜미디어를 비판한다. 소셜미디어의 에코 챔버 현상이나 정치적 편향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잘못된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실증 연구들은 소셜 미디어나 언론의 영향력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한국의 언론 지형이 이번 선거 기간에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지 않은가?  만약 좌파 언론의 왜곡이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면 지난 대선이나 지방선거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이 모든 설명들은 '유권자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보수권의 정치 고관여자들은 주택 가격 급등으로 청년들을 절망에 빠트리고, 종부세로 중산층을 강탈하고, 최저임금 급격 상승으로 물가를 크게 올리고, 자영업을 궁지에 몰아넣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경제 실정에도 불구하고 고작 “대파” 가격 실언을 가지고 대통령을 공격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어떻게 온갖 범죄로 얼룩진 조국과 이재명의 결점을 보지 못하냐’고 ‘왜 586 운동권을 심판하지 않는느냐'고 외쳤다. 그런데 총선 여당의 참패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결과일까?

 

"유권자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에 대한 유권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인기는 설명될 수 있다. 트럼프는 사회 문제 해결에 무능하고 정쟁에만 몰두한 말뿐인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즉각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을 취한다. 미국의 선거는 반복되는 논쟁으로 채워진다. 이민에 대한 논쟁, 총기 규제에 관한 논쟁, 범죄에 관한 논쟁, 그리고 성소수자 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에 대한 배려에 대한 논쟁이 반복된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이러한 논쟁은 이념에 충실한 관념적 논쟁일 뿐 자신들의 일자리나 경제적 불안에 대한 것은 아니다. 미국 유권자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에 아무런 해법도 주지 못하는, 이념적으로 무장한 소수에 의해 장악된 정치권에 실망을 해왔다. 반면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그 실효성이나 논리는 차지하고라도 중국에게 즉각적인 관세를 부과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막겠다고 국경에 담을 세우는 등 실천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는 이념에서 자유로운 실용주의자다. 그는 대법원 인적 구성을 바꾸어 낙태가 여성의 기본권이라는 대법원의 과거 판결을 뒤집었다. 그러나 강경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전면적 낙태 금지에 찬성하지 않고 각 주의 결정이라며 중간 입장을 취한다. 중국을 때리면서도 시진핑과 개인적으로 좋은 관계를 자랑한다. 틱톡 금지와 강제 매각에도 동조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들이 유권자들에게 실용적이고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경고가 먹혀들지 않는 이유

트럼프 반대자들은 그가 미국의 민주주의에 위협이라는 주장으로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미국 국민들에게 미국의 제도와 관습이 독재 대통령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부통령 비롯해서 법무부 장관 등에 압력을 가해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임명한 사람들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의 부정 선거 주장은 160번의 재판에서 어떤 법정도 동의하지 않고 모조리 기각됐다. 반면 그의 범죄 혐의는 배심원과 법원에 의해 채택되어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이 4개의 법정에 형사범죄의 혐의자로 기소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즉 독재자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과장되고 현실적인 주장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한국 총선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들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유권자들의 선택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각도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은 주식 시장의 그것과 유사하다. 금융에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주식 시장이 변동성이 강하고 루머에 출렁이는 것 같아도 결국은 기업의 가치들이 제대로 반영된다는 이론이다.

 

주식 시장에는 상장 기업의 성과와 가치, 그리고 기업이 취한 과거의 선택들을 잘 이해하는 기관투자자들이 있는가 하면 시세에 따라 반응하고 그런 장기적이고 깊이 있는 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고, 정보를 취할 능력도 결핍한 단기적인 개인투자자들이 공존한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의 가격에 반응하면서 사고 파는 것들은 결국 효율적 시장에 함께 기여한다.

 

정치에서 조국이 과거에 어떤 짓을 했고, 전정권에서 무엇이 진행되었는지를 기억하는 정치 고관여 유권자들이 있고, 정치에 관심이 적은 정치 무관심의 유권자들이 혼재한다. 하지만 이 단기 기억만 있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잘못된 선택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주식 시장의 개인투자자들의 움직임과 동일하다. 비록 정보가 적지만 주식 시장의 흐름을 보고 기업 가치를 추정하는 반응들이 종합적으로 시장의 합리적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정치 고관여 사람들의 주장이 합리적인가 아닌가를 민심은 판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국민이 갑자기 바보가 되었나?

보수 여권의 폭망을 이해할 수 없는 지지자들은 국민의 선택을 비난하고 수용을 거부하기 전에 자문해 봐야 한다. 왜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그 이전의 지방 보궐 선거에서는 지금의 보수 여당이 승리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대패했는지를. 그때 국민이 바른 선택을 했다면 이번 선택만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국민이 단기간에 바보들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설자리가 없다.

 

이번 4.10 총선의 프레임은 정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이었다. 이는 현 정권 즉 대통령에게 의회 권력까지 더해 주는 것이 국가와 내 삶에 더 좋은가, 아니면 야당에게 행정부의 권력을 통제하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선택인가 사이의 결정이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정권 심판론 즉 윤석열 대통령에게 행정부의 권력에 의회 권력까지 함께 주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는 명백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정권심판론이 자리잡고 난 이후에 누구를 앞세운들 큰 효과는 없다. 보수 일각의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한 높은 기대는 그래서 허망한 것이었다. 인류 역사나 개인의 삶에서 절망적일 때 메시아를 갈구한다. 최근 한 언론사의 전언에 따르면 선거운동 기간 중에 야당이 “비명횡사” 공천 파동을 겪고 여당은 비교적 조용한 공천을 해서 가장 낙관적일 때 여당의 여의도 연구소의 여당의 당선 기대 의석수는 135-138석이었다고 한다. 이는 이후에 용산발 악재가 없었다고 해도 이미 국민들은 정권심판의 의지가 굳어져 있었고 의석 수의 차이는 지금보다 30석 정도 줄었겠지만 여소야대의 구조도 야당의 입법폭주도 처음부터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정권심판'.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독단적이고 권력을 남용하며 일방적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국민의 의심에 기인한 것이다. 국민이 윤 대통령과 여권을 위험하게 보는 징후는 이미 지난 2년의 집권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윤 대통령 집권 2개월부터 부정지지가 긍정지지에 비해 두 배가 되었고, 이러한 지지율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집권 2개월만에 레임덕에 준하는 부정적 지지가 고착화되었던 대통령은 역대에 없었다.

 

그것은 여당에 대한 그의 일방적 굴복의 요구, 이준석 전 대표의 축출의 정치 공작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집권 여당이 2년 사이에 비대위라는 비정상 체제를 3번이나 꾸리는 비정상의 정치가 상시화 되어왔다. 이런 비정상은 공천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의원들과 극렬 여당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의 정당 민주주의에 반하는 권력남용적이고 권위적 통치를 옹호하면서 지속됐다. 

 

대선을 어떻게 승리했는가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인식이 있었다면 윤 대통령의 계속되는 뺄셈 정치는 이해할 수 없는 우매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7%나 17%의 차이로 승리한 것이 아니다. 단지 0.7%의 차이로 승리한 대통령이다. 이재명이라는 무수한 전과와 대장동 의혹의 흠결투성이의 후보와의 대결에서 고작 0.7%p, 역대 가장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것이다. 윤 대통령 승리의 가장 큰 원인은 역대 선거와 달리 2030의 보수당 지지였다.     

 

양당제가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 양당의 지지율은 큰 차이가 날 수 없다. 하지만 보수권은 보수가 원천적으로 유리한 정치 지형인양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이 1:1로 맞대결한 2012년의 박근혜 문재인 후보간 대선에서도 박 대통령은 3.53%의 차이로 승리했다. 그만큼 승리의 향방은 소수의 중도 표에 달려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의 기반이 되었던 청년층의 지지 기반을 이준석 전 대표 축출의 쿠데타로 윤 대통령 스스로 허문 것이 오늘의 결과다.

 

강서 구청장 보궐 선거의 참패는 더 분명한 신호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파산 지경의 정권 지지율의 지속에서도,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  

 

이런 부정적 지도자라면 선거 과정에 뒤로 숨는 것이 상식이다. 대통령과 의원들의 당선 가능성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데 코트테일 (Coat-tail) 효과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높으면 그 덕에 자당 의원들이 더 많이 당선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자당 의원들의 당선이 어려운 네거티브 코트테일 효과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대통령은 완전히 뒤로 숨어야 한다. 그런데 강서 보궐선거에서 저지른 실수를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도 반복했다.

 

상승세를 타던 국힘당의 기세가 꺾인 것은 윤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임명, 황상무 수석의 해임 지연, 의료 갈등, 그리고 민생 토론회를 통해 전면에 나서면서부터다. 이후 여의도 연구소의 예상 승리 의석수는 80-90석까기 급락하고 개헌선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에 호소해서 간신히 개헌저지선을 넘기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왜 야당 심판론은 먹히지 않았고, 범죄자들을 당선되었나? 흔히들 하는 말이 '어떻게 저런 비도덕적인 전과자들의 정당을 지지하느냐'는 것이다. 정치인의 선정 기준이 도덕성이어야 하는지, 정치를 도덕을 최우선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지에 대해서 나는 늘 의문을 품어 왔고 회의적 견해를 밝혀 왔다. 성리학적인 군자를 뽑으면 좋겠지만 그들이 유능한 정치를 할 것이라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인 정치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덕성은 사전에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는다. 권력이 없었을 때와 권력이 있었을 때 인간이 하는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말도 안 되는 “이조조선”을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흠결 많은 야당을 지지했는가? 하나는 정권 심판론의 긴급성이 국민들에게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지금도 여소야대의 야당 당대표이고 국회의원이다. 이 현상이 지속되는 것일 뿐 국민들에게는 새로운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조국이 스타로 부상하는가? 선거 기간 중에 우연히 젊은 여성 두 분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권력을 갖고 있는 윤석열, 한동훈이 야당을 심판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하며 혀를 찼다. 이것이 핵심이다. 국민은 권력의 집중이 더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조국과 이재명에 대한 위험성은 국민이 판단할 때 시급성이 없는 이슈다. 이들이 정권을 잡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 대선에서 고민하면 된다. 즉 국민들은 이재명-조국을 현존하는 긴급한 위험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잠재적 독재자으로 보지 않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도덕성 우위를 스스로 허문 윤 대통령과 여당의 극성 지지자들은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이미 윤 정부와 보수권의 도덕적 우위는 무너졌다. 윤 대통령은 아내 김건희 여사와 처가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서, 그리고 수사 대상인 이종섭 전국방장관의 호주 대사의 임명과 수사 중 파견으로 ‘정의로운 대통령’이라는 도덕적 기반을 스스로 허물었다. 국민들에게 사법권이 권력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즉 비판자들에게 저들이 ‘검찰 독재의 피해자’라고 주장할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공평함에 민감하다. 절대적 평등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공정과 공평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분노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사법권을 자신의 편에게는 다르게 적용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것이 김건희 특검의 거부권 행사였다. 이때 한마디도 못하는 한동훈의 정체성도 함께 함몰됐다. 김건희 특검이 '과도한 정치적 특검'이라는 논리는 일부 보수권의 논리일 뿐이다. 그 생생한 동영상과 김건희 여사의 발언,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대한 혐의와 처가의 고속도록 인근의 땅투기 혐의에 윤 대통령은 그가 검찰에서 행했던 엄정한 검찰권 행사와 너무 다른 위선적 모습으로 대응했다.   

 

이미 주가에 반영된 정보는 주가를 변경하지 못한다

이재명의 전과사실과 범죄혐의, 조국 일가의 범죄혐의와 실형 선고는 이미 온 국민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실들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이들 정보는 이미 국민들의 판단에 모두 적용됐다. 이를 강조하는 것은 이미 주가에 반영된 정보를 가지고 주식이 추가로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조국과 이재명을 선택하면 안 되는 새로운 이유, 아니면 여권을 지지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미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야당 심판론을 제기했다. 야당을 심판하려 했으면 여당은 국회에서 정말 열심히 싸웠어야 했다. 더 좋은 입법안을 내놓고 죽을 각오로 싸웠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여당은 너무나 웰빙 정당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신을 검찰에 박해를 받는 야당으로 연출했다. 여당을 박해하는 야당을 심판하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은 것이다.

 

권위적이고 정무 감각 전무한 대통령과 여권

대통령의 정무 감각의 부재는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어 왔고 선거운동 기간 중에 더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선거 즈음 국내 사과, 감자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국민들은 사과 한알도 제대로 사먹을 수 없었다. 서울의 식품 물가가 동경에 비해 32% 높은 것은 현실이다. 물가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을 초과한 시점에 대통령이 시장에 가서 ‘대파 가격이 이만하면 합리적’이라고 발언한 것이 주부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야당이 조롱하기 좋은 먹이감을 스스로 던져 준 대통령과 여권의 행동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국회 세종시 이전이나 경기도 일부 도시의 서울 편입과 같은 공약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충남과 수도권에서 대패한 것도, 공약을 설득할 논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 이르게 터트렸기 때문이다. 서울-경기도 메가시티 공약이나 패색이 짙어진 이후 불쑥 내민 국회 이전 공약은 이번 총선이 사전 조사나 전략이 부재한 선거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윤 대통령의 음모론적 시각의 뺄셈 정치

윤 대통령이 사회를 보는 눈이 검찰의 비리 수사를 보는 시각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것은 지난 2년간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왔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에 대한 반대에 직면하면 종종 “이권 카르텔”이라는 음모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R&D 예산 삭감에 과학계가 반발하자 과학계의 뿌리 깊은 “과학계의 나누어 먹기의 이권 카르텔”을 비난했다. 모든 예산이 정부 공무원들이 나누어주는 현실에서 무슨 뚱딴지 같은 과학계의 카르텔인지? 그로 인해 윤 정부는 과학계의 지지를 잃었다. 수능문제를 들고 나오면서도 킬러 문항의 장사를 하는 강남 학원가의 카르텔을 지적하고, 의사 정원 확대에 반대하니 의료계의 이권 카르텔을 지목하는 식이다. 세상이 모두 이권 카르텔의 범죄 조직화되어 있는 듯한 언어를 사용해 여권 지지층의 전문직 종사자들의 자존심을 훼손하면서 등을 돌리게 하는 뺄셈 정치를 끊임없이 계속해왔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압도적인 여소야대는 현실이다. 윤 대통령과 가장 선명하게 대결적으로 행동해 온 정치인들이 모두 야당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총선 결과는 평상의 세상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정치 리스크 즉 블랙 스완(검은 백조)을 탄색시켰다. 그것은 이 나라의 정치 최대 지주 두 명(윤석열-이재명)의 도덕적 해이와 대리인 문제를 일으켰다.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는 대리인(머슴)이 주인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를 앞세우는 경우를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국민(주인)의 이해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해를 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재명 대표는 사법 리스크를 탈출해야만 하는 최대의 정치적 난관에 직면했다. 이번 총선과 무관하게 존재해왔던, 정치적 생명의 연장여부는 물론 개인이 감옥을 가는 문제 말이다.

 

이재명의 생존 전략은 두 가지 뿐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 전에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재판 지연 전술을 쓰거나 대선을 앞당기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법원이 알아서 유력 정치인에게 정치적 판결을 해 줄 것이라는 낙관론에 입각한 모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노릴 강한 인센티브가 존재한다. 총선 결과와 20%로 추락한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힘이 그에게 있다고 믿을 가능성을 키웠다. 다시금 헌정 질서의 중단과 광화문 광장의 비명으로 나라가 쪼개지는 리스크가 커진 것이다.

 

다른 한쪽은 윤 대통령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다. 이제 그는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칠 수 있느냐 식물 대통령이 되느냐의 위기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불통을 던져버리고, 합리적이고 정치를 하는 대통령이 되는 순기능을 넘어 생존 위협으로 인식되는 순간, 그는 국가와 보수권의 기대와 다른 정치적 야합과 극단적 선택의 유혹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야당의 공세뿐만 아니라 이제 공천권과 무관한 윤 대통령에 대해 여당의 반란이 시작되면 이런 유혹에 빠질 공산은 더 커진다. 

 

대통령이 야당과 권력 공유를 미끼로, 사회주의적 개헌 야합으로 정치적 생명 연장에 합의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양당의 의원들과 지지자들은 각자 캠프의 지도자를 제어하거나 합리적 행동으로 견인하기 보다는 반대로 움직이게 만들어 왔다.

 

여당의 개혁이 없다면 총선 이후 이들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선동이 시작되면 우중은 자제력과 판단력을 잃고, 인민재판이 시작되면 사법부도 굴복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았다.

 

총선 참패 이후에 여권이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우선 여당이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대통령이 어젠다 주도를 못하는 현실에서 정당 민주화를 통해 민의가 국회와 용산을 이끄는 정당다운 정당이 되어야 한다. 개방적 정당 플랫폼을 재구축해서 문제의 근원인 윤 대통령을 여당과 강경 지지자들이 제어해야 한다.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를 대선에서 물리쳐 준 공을 국민에게 다시 팔 수는 없다. 그것은 지난 일이고 윤 대통령에 권력을 주는 것으로 국민은 충분히 보상했다. 이재명이나 조국을 다시 물리쳐줄 사람도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다. 그 고민을 국민은 지금 하지 않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 하면 된다.

 

그보다 앞서 극성 보수층의 현실부정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민심은 옳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내가 부정선거론을 걱정해 온 가장 근본적은 이유가 이것이다. 부정선거론은 현실 부정이다. 희망 고문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지난 총선에서 지고나서 왜 졌는지를 밝히지 않아서 아직까지도 보수층의 투표 의욕을 낮추고 야당 지지자들이 조롱하는 부정선거의 음모론이 지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준석 당선인에게 정중히 사죄하고 이권 카르텔로 비난하고 검찰권력으로 제압하려 했던 의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대선 승리의 정치 기반을 복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국민은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버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정무 감각을 갖고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지난 2년의 경험은 그런 낙관적 기대를 하기 힘들게 한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 자신보다는 다음 대선 후보군들의 경쟁을 통해 국민들의 시선과 기대를 여당에게 쏠리게 해야 한다. 저쪽은 이재명 대표에게 도전할 수 있는 구도가 아니여서 드라마가 쓰여질 가능성이 없다. 여당 안에 빨리 대선 후보군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윤 대통령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은 어젠다 세팅을 잘하는 창조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장 비창조적이고 틀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직업이 법률가들이다. 정무 감각과 정치에 훈련이 안된 채 권력을 잡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자 회견도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번 정권은 한동훈 전 법무장관 이외는 국민들이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장관이 없다는 점이다. 대언론, 대국민 설득력이 없다면 대통령이 내각을 전진 배치하는 것이 맞다. 

 

그 무엇보다도 이번 정권은 브랜드화한 경제 정책이 없는 최초의 보수정권이다. 민생이든 장기적 경제 개혁이든 정부가 일을 하고 있고 국민을 챙기고 있다는 굵직한 경제 정책이 있어야 한다. 모든 개혁을 다하겠다고 하고 구체성 있는 정책은 하나도 없은 이 상황으로는 정권이 왜 권력을 가져야 하는지 국민들은 계속 의심할 것이다.

 

보수 지지층은 선거 결과를 흔쾌히 수용해야 한다. 상품이나 자본시장에도 선거에도 절대적 기준이 작동하지 않는다. 대안 중에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상대적 비교일 뿐이다. 제시된 위협 중에 더 위협적인 것을 배제한다.  그래서 절대적 도덕적 마지노선이나 금기가 있다는 가정은 위험하고 틀린 것이다. 이 선택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내가 이기면 민주주의와 민심의 승리이고 내가 지면 나라와 국민이 미쳤다는 인식으로는 보수는 희망이 없다. 윤 대통령을 고쳐서 쓸 것인지 대안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 보수층도 눈을 부릅뜨고 윤 대통령을 비판적 시각에서 감시를 시작할 때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텍사스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 경영대 부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경제지식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