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대환 민주화운동 동지회 회장이 주체사상파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주사파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보나 좌파로도 분류할 수 없는 범위 밖에 있는 사상”이라고 지적했다. 주 회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당독재 체제인 북한을 추종하는 주사파를 인정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주 회장은 지난달 8일 서울 여의도 자유기업원에서 민주화운동 동지회 2기 출범식을 가졌다. 주 회장은 서울 공덕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지난달 21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주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민주화운동 동지회 회장에 취임했는데 소감은.
민주화운동 동지회 회원의 나이가 평균적으로 환갑을 넘었다. 성찰도 한 사회 어른으로서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사회 전체의 중심을 잡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세대 간의 대화를 통해서 이 나라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한다.
- 민주화운동 동지회 2기에서는 1기와는 다르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활동할 것인지?
1기에선 4·10 총선을 앞두고 결성이 되어서 정치적인 바람에 휩쓸렸다. 그래서 뜻한대로 하지 못했다. 현재는 진영 싸움과 사회 분열이 심하다.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 아닌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충돌하고 있고 생각한다. 우리는 중도 통합적인,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 가고 싶다.

- 민주화 운동을 위해 인생의 상당 부분 바치셨는데.
민주화 운동이랄게 별 것 없다. 물론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우리 동지회가 해야할 일들 중 하나가 민주화 운동에 대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신화, 환생을 깨는 것이다. 그런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에서 운동권 청산을 주장하셨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연루가 되어있는 셈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국민의힘의 운동권 청산론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방법이 조금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효과를 많이 발휘하지 못했다. 운동권 청산이라는 얘기를 다음 세대들이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586세대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으로 비춰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운동권 청산을 많이 했다. 86세대를 97세대로 대체했다.
- 97운동권 정치인들이 87운동권 정치인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나?
친북에 대해서는 심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민주당에 긍정적으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 최근 간첩혐의로 민주노총 간부들이 유죄를 받았다.
주사파는 북한 사상에 찌들어 있다. 그들은 아직 소수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 소수가 아니다. 그들을 감싸주고 있는 다수가 문제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민주노총 핵심부에서 움직일 수 있었겠는가. 곰팡이가 문제라기 보다는 곰팡이를 피우게 하는 환경이 문제다. 습한 환경에서 곰팡이 약을 뿌린다고 해서 곰팡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친북적인 민족주의는 반일, 민족과 평화라는 이름하에 좌파의 습성이 됐다. 이는 1987년 이후 운동권에서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 주사파들이 민주당에도 많은가?
문재인 정권때 확실히 그렇게 됐다고 얘기들을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지배적이지 않았다. 임종석 등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문재인 정권때 주사파가 민주당을 점령했다. 친북이다보니 젊은 사람들이 적다. 나는 주사파가 자유민주주의 범위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과 같은 일당독재를 지지하는 것은 진보나 좌파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렇기에 민주당이 170석이나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 고(故) 장기표 원장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화환 하나 보내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는 정치적인 단체가 아니기에 관련해서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고 장기표 원장이 진보 쪽을 오랫동안 비판했기에 민주당은 미운 감정이 큰 것 같다. 젊은 시절에 민주화 운동에 많이 기여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대한 예우를 할 상태가 아니다. 진영 대립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 민주화를 이루는데 일조했다며 정계에 입문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게 되도록 한 여러 환경이 있겠지만 문제는 그들이 너무 오랫동안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평화 통일 운동을 하면서 형성된 수만명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니 거대한 정치세력이 됐다. 그 밑의 세대들이 그것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힘이 작용을 하다보니 흐름을 막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1987년에 20살이라고 하면 그 밑으로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할 수 없다. 이미 민주화가 이루어졌는데 어떻게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할 수 있나. 그것은 관념적인 환상 속에서 얘기를 하는 것이다.

-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청년들의 생각이 나와 다르지 않을꺼 같다. 그런데 좀 더 분명하게 사회에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철딱서니 없는 이모 삼촌을 향해 떳떳하게 우리들의 생각은 다르다고 말을 해줫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조국이나 윤미향 정청래 최민희 등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용납하고 봐주는 것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 정치인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보다 젊은 사람들이 나서서 크게 목소리를 내줬다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 강했을 것이다.
- 본인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 있다면?
후회되는 것은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았는데 너무 많이했다. 유신 체제를 선포할 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민주화를 이룬 1987년엔 34살이었다. 민주헌정이 작동하지 않았던 15년이라는 시간동안 불가피한 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업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다른 나라에서 아카데믹한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몇 년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민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