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23년간 유대인 학생들을 가르쳐 온 수지 오 교장이 지난 2015년 EBS ‘EBS 초대석’ 방송에서 남긴 말이 있다. “한국 학부모는 교육 전문가의 말보다 옆집 아줌마의 말을 더 신뢰한다.” 이 말에 마냥 웃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국 사교육만 봐도 어떤가? 공부 잘하는 옆집 아이가 가는 학원을 내 자녀도 따라 보내는 게 한국 사교육의 구조로 자리 잡지 않았나. 물론 사교육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옆집 아이 따라 하는 것도 항상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자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또 이 상황에 맞는 교육이 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큰 문제가 된다. 돈은 돈대로 날리고, 부모와 자녀 간의 신뢰 관계도 많이 흐트러진다. 자녀를 향한 사랑보다, 내 자녀를 옆집 아이와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열등감이 우선되면 생기는 문제다. 비교 의식이 더하고 더해져 학원가에 ‘초등 의대관’ 바람이 불어온 지도 꽤 되었다. 의대 열풍에 힘입어 초등학생 때부터 선행학습에 힘쓰며 의대 진학 코스를 만들어주겠다는 마케팅이다. 내 자녀가 다른 아이보다 어떻게든 빨리 진도 나가길 원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이것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 하지
26일 국회는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에서 야당추천 후보만 통과시키고 여당추천 후보는 부결시키는 이례적인 결과를 연출해 국회는 한동안 소란스러운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추경호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간 대화와 협상의 기본이라 할 신뢰마저 헌신짝처럼 내던진" “사기 반칙, 의회정치 파괴"라고 언성을 높이며 전원 퇴장했다. 원내대표 간 의사일정을 어느 정도까지 협의를 하는 것인지 국회의장이 결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야당을 그래도 신의가 있는 정당이라고 믿고 야당 추천 위원을 먼저 의결하고 여당 추천 위원을 나중에 의결한 의사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의결에 앞서 야당의 의총에서 서미화 의원은 여당추천 후보자가 일간지에 '민주당의 이 대표 수사 검사에 대한 탄핵 소추는 법치파괴'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것을 꼽았다는 보도다. 이어 “사기 반칙”이라는 추경호 여당 원내대표의 비판에 대해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에 누가 사기를 당했나. 국민이 사기를 당했다"며 "자기가 사기꾼일 때 남에게 사기꾼이라고 외치는 거다. 국민의힘은 부끄럽게 생각하라"고 상황에 맞지도 않은 얼토당토 않게 윤정부를 끌어들이는 비난을 했다.
“우리나라가 몇 살일까?” 하고 물으면 “반만년”이라 답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반만년의 역사를 ‘한국사’라는 이름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2024) 76년 됐고, 이 한국이 우리나라다. 1919년 건국론자들이 주장하듯 올해를 건국 105년으로 계산하더라도 반만년은 틀린 계산이다. 반만년의 역사, 즉 대한민국 건국 전까지도 모두 포괄한 역사를 말하려면 한국사가 아닌 ‘한반도 역사’라고 하는 것이 맞다. 왜 우리나라 나이를 반만년이라 하는 걸까? 우리 것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조선도, 고려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뭉뚱그려, 우리나라가 아닌 나라에 대해서도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는 ‘헬조선’이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난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처음에 만들어진 건 2010년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서다.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헬조선”이라는 말이 향했던 곳은 이씨 조선(1392-1910)이었다. 천민과 여성들을 핍박하고 중국의 속국인 채 계속하여 퇴보하는 조선이 헬(Hell, 지옥)과 같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 단어가 퍼지면서 의미의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조선이
13일 더불어민주당 일부의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을 잇따라 펴고 있다. 심지어 이재명 대표도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부인했지만 민주당은 “제보와 정황이 있다” “이 정권 어딘가에서 계엄령을 기획하고 있을 것”이라는 등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괴담을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주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만에 하나 정부가 계엄령을 발동한다 해도 헌법상 국회가 재적 과반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하면 계엄은 즉시 해제된다. 민주당과 야권이 192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곧바로 해제될 게 뻔한 계엄령을 대통령이 왜 선포하겠나. 계엄령 해제를 막으려 야당 국회의원들을 체포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의원 체포엔 국회 동의가 필요한데 절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동의해 줄 건가. 김 최고위원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계엄령 준비 의혹’을 두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외계인에 대비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해선 "정부와 여당의 모습 자체가 외계적 현실"이라고 반박했다. 국회중진으로서
류승완 감독의 이전 작품을 꿰고 있는 누군가가 ‘베테랑2’(2024)를 본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류 감독 특유의 액션신은 변함없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만, ‘베테랑2’에 담긴 메시지를 보면 다른 사람이 제작한 영화를 보는 듯하다. 급진적인 변화가 있으면 찬반이 명확히 갈리듯, ‘베테랑2’도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다. ‘베테랑1’(2015)이 1300만 명의 관객을 확보하며 높은 평점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이 상상 속에서나 원하던 것, 재벌을 무찌르며 카타르시스 느끼는 것을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재벌을 악마화하며 그리는 선악 구도가 억지이긴 해도 대중은 그런 이분법을 좋아한다. ‘베테랑1’이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범죄자가 아니라 선하고 매우 성실한 인물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볼 사람만 보는 영화가 됐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재벌이 되기까지 또 재벌의 가족으로 살면서 매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현실은 대중이 궁금한 게 아니다. 겉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재벌의 삶을 시기하고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대중 심리를, 류승완 감독은 잘 이용했다. 그런데 ‘베테랑2’에서는 대중 심리를 이
재작년(2022) 추석 당시 세 영화 ‘공조2’, ‘육사오’, ‘헌트’가 경쟁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탈주’까지, 모두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다. 흥행작을 찾기 힘든 최근 영화계에서 이들은 모두 꽤 많은 관객을 확보했다. 마침 이 시기에 북한 소재 영화가 재밌는 게 많이 나와 우연히 그런 걸까? 영화가 흥행하는 건 여러 이유가 있기에 그런 측면도 없진 않겠다. 하지만 북한을 소재로 했다는 것 자체가 재밌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영화감독 입장에서나 관객 입장에서나 ‘북한’이란 상당히 미스터리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북한은, 안 좋은 곳인 줄은 알지만 가본 사람이 극소수여서 미스터리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니 영화감독 입장에서도 그런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의 영화를 제작하기 좋고, 그러면 관객도 더 흥미를 느낀다. 북한 소재 영화가 많이 제작될 수밖에 없고 또 이 중에서 흥행작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에도, 대한민국에 영화라는 게 존재하고서부터도 북한 소재 영화는 많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북한이란 공간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실은 23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오염수를 방류한 지 1년이 됐지만 과학적으로 이상이 없었다고 강조하면서 야당의 '후쿠시마 괴담'이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야당이 후쿠시마 괴담을 방류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라며 "과학적 근거 없는 황당한 괴담이 거짓 선동으로 밝혀졌음에도 괴담 근원지인 야당은 대국민 사과조차 없이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양 방사능 조사지점을 92개소에서 243개소로 확대했고 수입 신고된 모든 수산물에 대한 생산지 증명서를 확인해 왔다"며 "지난 1년 동안 국내 해역, 공해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4만 9600여건의 검사를 진행한 결과 안전기준을 벗어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쓰지 않았어도 될 예산 1조 6000억원이 투입됐다"며 "야당이 과학적 근거를 신뢰하고 민생을 위한 정치를 했다면 바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일 수 있었던 혈세"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 공포감 증가와 국민 분열로 인해 들어간 사회적 비용은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며 "괴담 피해는 어민, 수산업 종사자 그리고 국민들에
법원이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새 이사들에 대한 임명 효력 집행정지 사건의 결론을 26일까지 낼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는 지난달 31일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위원이 임명된 지 약 10시간 만에 방문진 신임 이사로 김동률 서강대 교수,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위원, 윤길용 방심위 방송자문 특별위원, 이우용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임무영 변호사, 허익범 변호사 등 6명을 선임했다. 이에 권태선 이사장 등 야권 성향 이사 3명과 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한 후보자 3명은 '2인 체제'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를 임명한 처분이 위법하다며 각각 취소소송을 내고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심리 및 결정에 필요한 기간 동안 임기 만료 예정인 방문진 이사들과 후임자로 임명된 자들 사이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며 "잠정적으로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기로 했다"며 신임 이사 6명에 대한 임명 효력을 이달 26일까지 임시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강재원 부장판사)는 19일 오전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 김기중·박선아 이사가 방문진 새 이사들의 임명을 정지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신청의 첫
이제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한다. 그런데 많은 국민은 실감하지 못하겠다는 불평이 적지 않다. 한국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류 문명의 발전사는 앞선 선각자(先覺者)의 성공문화유전자(meme)가 복제(複製)·전파되는 과정이다. 개인의 발전은 물론 사회, 국가, 문명의 번영은 모두 앞선 선각자의 성공비법(노하우)을 무임 승차하여 배우고 복제함으로써 새로운 번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문명의 발전은 그래서 물이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르듯이 앞선 선발 문명을 따라 이를 창의적으로 복제한 후발 문명이 선발 문명을 뛰어넘어 그다음을 이어가는 과정이었다. 세상은 그래서 문명의 주도 세력은 달라져도-적어도 아직까지는- 꾸준한 발전을 이어온 것이다. 원시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끝없는 공산·사회주의 이념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면서 산업자본주의에서 지식·정보에 기반한 첨단 자본주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모두 다 평등하지는 않지만 끝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뤄내어 인류의 보편적인 삶은 이제 유사 이래 그 유례가 없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마치 대장간에서 제조한 마차를 굴
7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안을 재가하자마자 이 위원장은 곧바로 과천 방통위 청사로 출근해 취임식 후 전광석화같이 KBS이사와 MBC 방문진 이사 임명안을 의결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기관장도 1일 임명했다. 주요 현안들을 그야말로 단숨에 의결한 것이다. 이를 두고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새로운미래·기본소득당 등 6개 야당은 1일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야당이 방통위 관련 탄핵안을 제출한 것은 이동관·김홍일 전 방통위원장과 이상인 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에 이이 벌써 네 번째다. 탄핵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 있는 경우에 가능한데 과연 방통위가 연이어 중대한 헌법위반을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앞서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탄핵으로 기소되었던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청구는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30일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며 "윤 정권의 방통위원장 인재 풀이 고갈 날 때까지 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