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4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이 지난해 전망했던 2027년보다 2년 늦은 2029년 달성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IMF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2027년에 한국의 1인당 GDP가 4만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시기를 2년이나 늦춘 것이다.
IMF는 그 이유로 인구 구조 변화와 산업 혁신 지체 등 한국의 저성장 고착화 조짐이 뚜렷해지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오르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합계출산율은 2016년 1.18명에서 2023년 0.72명까지 떨어졌고, 작년에야 0.75명으로 소폭 반등했다. 제조업 혁신도 정체됐다. 한국은 여전히 선박·석유제품·승용차·반도체에 의존하고, 일부 첨단 분야는 중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잠재성장률은 2010년 3%대에서 올해 1%대 후반으로 낮아졌다. 정부는 인공지능(AI)·초혁신경제 투자를 통한 생산성 제고를 강조하지만, 저출산·연금 고갈 등 구조개혁 과제가 뒤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IMF는 올 7월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0%에서 0.8%로 추가로 낮추면서 1인당 GDP 증가 속도는 더욱 느려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한국의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7,430달러로 대만 3만 8,066달러에 못 미칠 것으로 추산돼 2003년 이후 22년 만에 역전을 허용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더구나 대만 정부는 내년 1인당 GDP가 4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2029년이 돼서야 4만 달러 진입이 가능할 듯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한국 경제의 급격한 체력 저하를 방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만의 올해 2분기 실질 GDP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나 증가했다. 대만 정부는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올해 성장률도 당초 3.10%에서 4.45%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각각 0.9%, 1.8%에 그쳐 잠재성장률(1.9%)에도 못 미치는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다.
대만과 한국의 뚜렷한 성장률 차이는 기업을 대하는 정부와 국회의 인식과 태도에 기인한다. 대만은 일찍이 2023년 여야 합의로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지원을 위한 ‘반도체법’을 통과시켜 투자와 고용을 총력 지원하고 있다. 반도체와 전기차 등 전략산업 연구개발 비용의 25%, 시설 투자의 5%에 대해 세액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말로는 반도체특별법 운운하면서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주52시간 예외 조항을 빌미 삼아 여태 법안 통과를 미루고 있는 우리 국회와는 딴판이다.
한국은행은 작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6624달러라고 밝혔다. 한국의 1인당 GNI는 2013년 2만 8827달러에서 2014년 3만 935달러로 올라선 뒤, 2021년 3만 7898달러로 최고점을 찍었다. 그러나 코로나와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 등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다시 하락한 후 지난해 3만 6624달러로 소폭 반등한 것이다. 2014년 처음 3만 달러를 돌파한 뒤 11년째 4만 달러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벽을 넘은 나라는 2024년 국제통화기금 기준 (2024.10 전망, 달러) 미국(86,601) 네덜란드(67,984) 호주(65,966) 스웨덴(57,212) 벨기에(56,128) 독일(55,521) 캐나다(53,834) 영국(52,423) 프랑스(48,012) 그리고 지난 해 간신히 4만 달러에 올라선 이태리(40,286) 10개국이다. 일본은 1992년에 3만 달러에 올라선 후 18년 만인 2009년에 4만 달러대에 올라섰으나 2022년에 다시 3만 달러대로 추락해 아직도 3만 달러대로 한국에 뒤지고 있다.
위의 10개 국가들이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까지 올라 선 데 평균 7년 걸렸다. 이는 과도한 복지를 추구했던 이태리(16년) 스웨덴(14년) 영국(10년)이 과도한 복지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소득이 등락하는 등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들 국가들과 경제규모가 워낙 큰 미국 (8년)을 제외하면 대개 호주와 캐나다가 3년, 벨기에 독일 프랑스가 5년, 심지어 네덜란드는 1년 만에 4만 달러대에 올라섰다. 3~5년 만에 4만 달러대에 올라서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이 11년째 3만 달러 박스권에 갇혀 있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증거다.
미국은 2025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30조 달러로 세계 전체 GDP의 26%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임에도 2023년 주요국 중 처음으로 8만 달러 시대를 열고 잠재성장률도 올라가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잠재성장률이 하락한다는 통설을 뒤엎고 있다. 미국의 힘은 끊임없는 혁신이다.
미국경제를 견인하는 빅테크 7사 애플(1976년 창립), 엔비디아(1993년), 메타(2004년), 알파벳(1998년), 마이크로소프트(1975년), 아마존(1994년), 테슬라(2003년)의 평균 설립기간이 33년일 정도로 젊다. 규제도 없고 혁신 기업에 진입 장벽이 높지 않고 창업주에 대한 복수의결권도 인정되어 경영권 위협 없이 엄청난 벤처캐피탈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가 두세 번이나 만났던 실리콘밸리의 중심지 산호세시 부시장은 정부가 하는 일은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과 사회적 인프라 제공 뿐이라고 강조했다. 법인세도 낮추고 리쇼어링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혜택으로 트럼프1기에서 한 해 800개가 넘는 기업이 돌아오기도 했다.
영국은 2002년 3만 달러를 넘은 지 3년 째인 2004년 4만달러를 넘었다. 사라지는 제조업 일자리 대신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그만큼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낸 것이 비결이다. 대처정부가 추진했던 빅뱅이라고 불렸던 금융의 파격적인 규제혁파와 혁신으로 런던은 세계 금융 중심지를 유지하며 4만 달러대로 올라섰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10여년 휘청거리던 독일은 사회민주당 출신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어젠다 2010’이라는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만성적인 복지병으로 신음해 오던 스웨덴도 구조개혁을 단행해 4만 달러대로 올라섰다.
결국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법인세를 낮추고 복지병을 치료하고 벤처금융을 육성하고 투자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핵심이다. 규제혁파는 작은 정부와 기득권의 혁파가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규제가 본능인 정부는 커지기만 하고 금융 규제는 갈수록 악화되어 2003년 추진되었던 동북아 금융중심지는 공염불이 되었다. 의료 등 각종 기득권은 난공불락이다. 노동조합은 정치투쟁은 물론 간첩까지 양산되는 온상임이 드러났는데도 손도 못쓰는 성역이 되어 노동의 유연성 제고는 언감생심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첨단시대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야 할 교육은 전교조 좌편향 교육에다 수십년 째 평준화만 지속해 학력수준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4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구조개혁 규제개혁이 절실한 때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확장 재정을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기업이 주도하지 않는 성장은 허상(虛像)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12일 과다한 국가 부채와 정치 혼란을 이유로 프랑스 신용 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역대급 확장 재정을 앞세우며 ‘돈풀기 수렁’에 깊이 빠져들려고 하는 우리나라는 프랑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복합 위기에 직면한 우리 경제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 주도 성장’이 아니라 ‘기업 주도 성장’이다. 당정은 돈풀기를 멈추고 근무시간 유연화와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붐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대만 테크 기업들이 국내 투자도 공격적으로 하고 있어 대만 잠재성장률이 3%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잠재성장률이 올해 2% 미만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대만의 소득 격차도 갈수록 더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테크 기업들의 위상과 역할이 급격히 위축되는 점을 직시하고 대만 기업들을 따라잡기 위한 전략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트루스가디언 논설위원